동피랑

 

동피랑은 통영시 바닷가 작은 언덕에 위치한 달동네다. 동네 바로 아래에 강구안이 있어서, 옛날에 통영이 어업으로 한창 활기찼던 시절에 뜨네기 뱃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다. 그러다가 항구가 점점 쇠퇴하면서 사람들이 떠나가고, 세월이 흐르면서 허름한 집들만 남게 됐다.

 

동피랑 지역 재개발 사업은 꽤 오래전부터 틈틈이 흘러나왔다 한다. 어느 순간부터 통영시가 동피랑 지역 부지와 가옥을 하나씩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재개발은 소문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동피랑 꼭대기는 공원으로 조성하고, 아랫쪽은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 주민들 사이에 떠돌았다.

 

그러던 어느날, 통영의 한 시민단체가 주축이 되어 동피랑 마을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마을 곳곳에 벽화들이 조금씩 채워지면서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애초에 통영의 볼거리 축에도 끼이지 못했던 조그만 달동네가 어느새 벽화마을로 유명해졌고, 통영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동피랑 벽화마을 이름은 알 정도로 알려져버렸다. 그러자 통영시도 마침내 벽화 그리기를 지원하기에 이르렀고, 마을 철거 계획을 취소하고 꼭대기에 공원만 조성하게 됐다. 여기까지가 동피랑의 간략한 최근 흐름이다.

 

 

동피랑의 성공 요인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달동네라는 특성에 벽화가 덧붙여진 것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가 원래 유명한 관광지였던 강구안이 가까운 것도 한 몫 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하나 있는데, 수시로 벽화를 새로 그리면서 새롭게 바꾼다는 것과, 벽화 작업에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참여도 받는다는 점이다.

 

만약 동피랑 벽화를 전문가들의 수준 높은 그림들로만 꾸미려고 했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일단 많은 돈을 들일 예산부터 부족했을 테고, 그런 금액을 꾸준히 투입하기도 벅찼을 거다. 게다가 입소문이 나기도 힘들지 않았을까.

 

통영 자체가 대한민국 한쪽 끝에 자리잡은 곳이고, 동피랑은 거기서도 또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한 번 가기도 어려운 곳인데다가, 강구안을 어쩌다 놀러갔다 하더라도 동피랑 비탈길을 꾸역꾸역 기어 오른다는 것은 참 힘겨운 일이다. 그런 곳이 전문가의 멋진 벽화 서너개 그려 넣는다해서 달라졌을까.

 

 

아마도 전국 각지의 일반인들도 벽화작업에 참여시킨 것이 입소문에 영향을 줬을 테다. 주위 아는 사람이 벽화 그리기에 참여했다고 하면 이름이라도 알려지니까. 그리고 수시로 벽화가 바뀌기 때문에 한 번 갔다온 사람들도 몇 년 후에 또 새로운 기분으로 방문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지속 가능한'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동피랑은 살아남았다. 한 마디로 이건 철거투쟁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마터면 포크레인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 앞에서 드러눕고 시위하는 그런 모습이 펼쳐질 수도 있었던 것을, 벽화를 이용해서 우아하게 해결한 것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도 나쁠게 없다. 다른 데서는 매년 홍보비용 들이부어도 소문조차 잘 나지 않는 관광지들이 즐비한데, 여기는 관공서가 크게 한 것도 없는데 어느날 갑자기 유명한 관광지 하나가 떡하니 생겨버린 거다. 말 그대로 넝쿨째 굴러 들어온 호박이다.

 

물론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남의 집 빤쭈까지 사진 찍더라"며 불편함을 호소하는 마을 주민들도 이었고, 더러는 집 팔고 이사가려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 싫어했던 주민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벽화가 마을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을 잘 인식해서, 주민들도 약간의 불편은 감내했다. 이후에 인기가 높아지면서 카페 등 가게를 하려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집을 팔 수도 있었을 테니, 어떻게든 출구를 꾀하던 사람들도 완전히 손해를 본 것 만은 아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이화마을

 

이화동 벽화마을도 재개발 예정 지역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재개발 계획이 최종 무산되고, 낙후지역 환경 개선 사업으로 벽화가 그려졌다. 그 과정에서 고층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해서 사업성이 없어져서 재개발 계획이 무산된 사정 같은 것들이 있다.

 

'이화마을 벽화 그리기 프로젝트'는 십여년 전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업으로 실행됐는데, 마을 중심 계단에 그려진 해바라기와 물고기 두 작품에만 5천만 원 넘는 돈이 들어갔다 한다. 그만큼 훌륭하고 거대한 작품이기도 해서 완성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갔다. 대학로와 가까운 동네라는 것도 한 몫 해서, 금방 벽화마을이라는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그러다가 2016년에 이화마을을 대표하던 해바라기와 물고기 그림이 몇몇 주민들에 의해 지워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동네가 관광지화 되면서 소음과 낙서, 쓰레기, 그리고 일부 방문객들의 무례함 등에 시달렸다고 하소연했다.

 

그 표면 뒷쪽의 일들도 약간 알려졌는데, 간단히 짚어보자면 이렇다. 서울시와 구청이 이 동네를 도시재생 차원에서 보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이 과정 속에서 기존 주택단지를 주거지역으로 못 박는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시기에 그런 사건이 터진 거라는 추측도 있다. 어쨌든 이화마을은 이미 재개발 계획이 철회된 상태였고, 관공의 주도로 벽화마을이 조성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참고: 이화동 벽화마을의 이면 (SBS))

 

 

그리고 벽화마을

 

이화마을 예를 들었지만, 이는 지금도 생기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벽화마을 사업 중 하나로 예를 든 것 뿐이다. 최초는 아니라 할지라도 최고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는 동피랑 벽화마을 이후에, 전국 곳곳에 벽화마을이 조성됐다. 그리고 그런 벽화마을들은 대체로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낙후된 지역이라는 것과, 관공에서 주최를 하거나 지원을 해서 사업이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벽화를 맡긴다는 것 등이다. 특징 몇 개를 나열하는 것으로 벌써 몇 가지 문제점들이 보인다.

 

대전 대동대전 공공미술. 사진은 본문과 상관 없음.

 

지자체 같은 관공이 주도를 하면 당연히 재개발 예정지역은 손 대지 않는다. 즉, 낙후된 지역이라 하더라도, 재개발 계획이 없는 곳을 대상으로 한다는 거다. 공공기관에서는, 벽화사업이 비교적 돈을 적게 들이면서도 성과가 확실히 눈에 보이는 사업이라는 것을 둘째 치더라도, 낙후된 지역을 화사하게 만들어 활기차게 만들겠다는 좋은 의도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주민들은 왜 그걸 좋아해야 할까.

 

물론 집 주인들은 좋을 수도 있다. 마을이 관광지화 되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 지금보다 비싼 값이 팔거나, 가게 하겠다는 사람에게 세를 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어떨까. 아침부터 밤까지 몰려드는 사람들 등살에 시달리면서도, 집 앞 가까이에 하나둘 생기는 가게들을 보면서 불안감과 위기감을 느껴야만 할 테다. 세를 올려달라면 올려주기 힘드니까 말이다. 결국 어느 순간 떠날 수 밖에 없게 된다. 단순히 관광객들의 소음과 추태를 참고 견디는 것 이상의 생존권 위협을 받는 것이다.

 

여수 고소동여수 벽화마을. 사진은 글 내용과 상관 없음.

 

그리고 예술가 등의 전문가들을 고용해서 벽화를 그리는 것 또한 문제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일반인들 속에 적절히 섞여서 소수를 차지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주축을 이룬다면 사업비가 만만치 않다. 그러면 벽화가 낡아도 새롭게 바꾸기 어렵게 된다. 이 마을 하나에만 계속 큰 예산을 투입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대로 벽화가 방치되면 결국 관광지가 된다해도 어느 순간 발길은 뜸해지고 가게만 남게 된다.

 

그나마 서울이면 벽화가 업데이트 되지 않더라도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관광지로 버틸 수는 있다. 하지만 지방이라면 어떨까. 아무리 멋져도 언제 가도 똑같은 벽화만 보인다면, 한 번 갔던 사람들이 다시 또 찾아갈 이유가 있을까. '지속 가능한 발전'에서 '지속'은 그냥 방치해둔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속을 위한 끊임없는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경희대 앞 벽화경희대 앞 벽화. 사진은 본문과 상관 없음.

 

전국 여기저기에 벽화마을이 참 많다. 무심코 가본 곳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벽화마을이 있기도 하고, 어디선가 한 번쯤 이름이 알려졌다가 수그러든 곳도 있다. 물론 마을 하나를 벽화로 화사하게 꾸미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을 수도 있지만, 낡아서 흐릿해진 벽화를 그대로 방치해둔 모습들을 보면 오히려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그나마 벽화사업 유행이 한 풀 꺾여서 다행이지만, 연말에 보도블럭 교체하듯 진행하는 벽화사업은 좀 그만했으면 싶다. 최소한 동피랑에 가서 그 역사와 진행과정, 성공비결, 계속되는 활동 등을 교육이라도 받는다면, 벽화사업이 과연 우리 지역에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닌지 정도는 판가름 할 수 있을 텐데. 껍데기를 따라하는 건 쉽지만, 그 안의 철학과 고민까지 모방하기란 쉽지 않다. 제발 카피하기 전에 그 속에 숨은 의미도 좀 배웠으면 싶다.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