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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사람은 어디로 가야할까 - 립반윙클의 신부잡다구리 2019. 1. 29. 00:34
주인공 '나나미'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현실에서는 조용히 살아가면서 SNS에서는 거짓말을 잔뜩 늘어놓으며 살아간다. "쇼핑하듯 쉽게" SNS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을 했고, 결혼식 하객도 SNS를 통해 만난 대행업자 '아무로'를 통해서 동원한다.
그런 결혼생활도 얼마 가지 못 해 남편의 불륜을 의심하게 됐고, 결국 파경에 이른다. 그러다가 생활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립반윙클'. 그녀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을 하면서, 두 여자는 조금씩 가까워지며 친구가 된다.
(이후 스포일러 잔뜩)
어쩌면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
나나미가 결혼식을 할 때부터 모든 것이 계획됐을 테다. 이미 아무로는 마시로에게 친구를 구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테고, 아무로는 이때 나나미를 찍었겠지. 현실 세계에서 친한 사람도 거의 없고, 딱히 갈 곳도 없는 나나미는, 생활에 파탄에 이르면 달리 갈 곳이 없다. 마시로에게 딱 맞는 상대다.
나나미와 마시로가 만난 하객 아르바이트는 일종의 면접이었을 테고, 이때 마시로는 나나미가 마음에 들었을 테다.
"세상이 너무 친절해서 모든 것을 돈으로 사는 것이 편한" 마시로.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야 "함께 죽을 친구"를 찾는다. 마시로에게 나나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찾은 좋은 친구였을까. 아니면 그 역시 돈으로 산 편한 어떤 것이었을까.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아픈데도 일을 하러 가는 마시로를 보면, 친구 같은 것보다는 세상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줄 어떤 기억 같은 것을 남기려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는 마시로는 그녀가 사용하던 아이디 '립반윙클' 처럼 떠나버렸다.
마시로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나카시마 미카가 울부짖듯 부르는 노래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이 떠올랐다. 세상의 친절함에 죽으려고 생각한 것일 지도.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에 조금은 기대해 볼 게"라고 말 하는 건지도.
립반윙클
'립 반 윙클'은 미국 작가 위싱턴 어빙이 쓴 단편소설이다. 매일 아내에게 잔소리를 들으며 구박받던 립 반 윙클은, 어느날 사냥을 나갔다가 선조들의 유령을 만나서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잠이 든다. 잠에서 깨어나 마을로 돌아가보니, 이미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있었다. 친구도 마누라도 이미 죽고 없었지만, 그래도 자식과 만나서 다시 잘(?) 살게 됐다는 이야기다.
극중에서 마시로가 '립반윙클'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니, '립반윙클의 신부'는 나나미를 뜻하겠다.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어떤 곳으로 떠난 립반윙클의 신부.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생각하며 매일 비탄에 빠져 살았을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포기를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았을까.
어쨌든 독특한 경험을 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 한 립반윙클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찌 보면 조용한 인생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나 지금 어디지
처음에 무료 영화로 볼 때는 별로 재미가 없어서 딴짓을 하면서 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자꾸만 한 장면이 가끔씩 떠올랐다.
나나미가 파혼을 하고 집에서 쫓겨나 어딘가를 하염없이 걸으면서, "나 지금 어디지? 여기가 어디지?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하고 펑펑 우는 장면.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본 것은 거의 이 장면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끊기고 돌아섰을 때의 그 막막함. 애초에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망할 일도 없었을 텐데하는 안타까움. 세상에 나 혼자 뿐이라는 그 절망감.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도 무시할 수 없다. 낯선 동네 어느 호텔에서 자고 일어나, 그 호텔 직원에게 혹시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냐고 물어서 바로 거기서 일 하며 살 수 있게 되는 장면.
애초에 결혼이라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멀리 나오지도 않았을 테지만, 그랬어도 기간제 교사에서 잘렸을 테고, 그러면 조용히 굶어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흘러흘러 가는 거겠지.
새벽 빛깔
감독도 SNS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고, 주요 등장인물들도 주로 SNS로 얽히고 큰 사건이 터진다. 어쩌면 아무로는 인터넷이나 SNS 그 자체라고 볼 수도 있다. 상냥하면서도 자신의 잇속을 다 챙기며, 자신은 절대로 손해를 보지도 않고, 사건에 깊이 관여하지도 않는 존재.
SNS를 통해서 만난 사람들과 겪는 사건들은 화려함 이면에 초라한 현실이 있었다. 나나미의 거짓 가득한 삶과 그녀의 결혼도 그랬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의 결혼식도 그랬으며, 하객 아르바이트로 모인 사람들 또한 그랬다. 물론 마시로의 삶도 그랬고.
그런데 과연 영화가 SNS를 소재로 잘 활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SNS를 통해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만나서 사건을 접했다는 것 뿐, 중반 이후부터는 SNS가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 이와이 슌지는 어디선가 이 영화를 두고, "나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지. 아마 그게 맞는 듯 하다.
잘 끼워맞춰서 립반윙클이 떠난 세계도 일종의 사이버 스페이스로 놓고 본다면, 사이버 스페이스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과, 또 다른 사이버 스페이스로 떠난 사람, 그리고 남겨진 사람 이야기. 그렇다면 그렇게 상대롤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걸까로 해석을 해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나나미가 펑펑 우는 장면 같은, 순간순간 한 장면, 한 장면씩을 보고 기억하는 영화로 생각하고 싶다. 메시지의 난해함과 반대로, 영화에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꽤 있다.
특히 이 영화는 '새벽'의 이미지를 정말 아름답게 표현했다. 물 빠진 듯 한 색감으로 거의 모든 장면이 새벽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새벽과 아침의 그 어스름한 빛과 분위기를 표현한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다.
코코
마시로로 등장한 코코(cocco). 어쩌면 이 영화는 코코에게 더욱 잘 어울리는 영화다. SNS라는 소재를 빼버리면 거의 코코에게 딱 맞는 영화이긴 한데, 물론 그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잘 어울렸을지는 별개의 문제. 마시로 역할이 잘 어울리고, 그 역할을 잘 소화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자 (영화 삽입곡으로 コスモロジー(Cosmology)가 들어갔다는 것도).
운이 없었던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수 코코도 조금 안타까운 인물이다. 웃는 모습은 그리도 이쁜데. 문득 이 영화 주연을 나카시마 미카와 코코가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완전 우울한 영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물론 그랬으면 이와이 슌지의 색깔이 안 나왔겠지. 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표현하기 위한 배우는 잘 찾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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