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4박 5일 (2005. 04. 21) (텐노지, 신세까이) 3/4<다음날>
전날 밤 쓸데 없이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잠을 거의 못 잤다.
피곤한 눈으로 아침 늦게 일어나 오사카 성으로 갔다.
이번이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그 동안 성벽의 저 곡선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멍청한 정신에 약간의 기운을 불어넣는 활기찬 곡선이었다.
오사카 성.
여기 쯤에 서서 찍으면, 성과 다리가 어울려 예쁘게 사진이 나온다는 사진 찍는 지점.
너무 많이 찍고, 너무 많이 봐서 식상한 그림.
저렇게 서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저 사람들 여차하면 칼을 뽑아 들고 닌자로 변신할 것만 같다.
물 마시는 척 하면서 한 십 분 바라봤는데, 아무도 동전을 주지 않았다.
오사카 성의 핵심 건물인 텐슈까꾸.
오사카 성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뭐 사실, 몰라도 별 상관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느낀 만큼 배울 뿐이다.
텐슈까꾸 옆에 있는 구 오사카 시립 박물관.
오사카 성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아주 을씨년스러운 건물.
오사카 성에서 가장 큰 크기의 돌멩이라고 한다.
무게가 130톤 정도라고.
저걸 어떻게 옮겼을까?
보나마나 무고한 백성들을 족쳤겠지.
한국의 성을 봐도 그렇고, 앙코르 와트를 봤을 때도 그렇고...
선조의 숨결과 장인정신 그딴 것 보다는
쓸 데 없는 개인의 욕심에 희생된 수많은 힘 없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멸종할 때까지 피라밋 조직을 유지할 수밖에 없겠지.
우두머리가 죽으면 엄청난 대군도 한꺼번에 무너지는 단점을 알면서도
그런 형태를 유지할 수밖에는 없는 거겠지...
벚꽃은 이미 졌고, 서늘한 바람이 간간히 꽃잎을 날리고 있었다.
바람에 지는 꽃잎을 보면서도 분위기를 잡는다.
죽어가는 생명을 보면서도 즐거워 하는 생물은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지 않을까.
오사카 역사 박물관과 BK플라자.
뭐 하는 곳인지는 알고 있지만, 위층까지 올라가 구경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처음 서울에 갔을 때, 친척집에 잠시 묵게 됐었다.
그때, 사촌 형과 누나가 서울 구경시켜준다고 63빌딩을 데려간 적이 있었다.
자기들은 입장료가 비싸서 안 들어갈 테니, 나 혼자 갔다 오라며 밖에서 기다린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들도 아직 빌딩 구경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뭐랄까... 부산 사람들이 여름에 물놀이 즐기러 해운대로 안 가는 이유와 비슷하달까...
가까이 있거나 자주 보게 되면 호기심도 줄어드나 보다.
다시 길을 걷고 지하철을 타고 블로섬 아웃렛 매장으로 갔다.
피곤한 눈으로 일행을 따라다니기만 했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으니까.
새로 생긴 벽인가, 여태껏 있었는데 못 봤던 것일까.
문득, 지금 일행도 저런 벽을 타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열심히 기어올라 가봤자 결국엔 아무것도 없는데 싶었다.
돌아다니기도 귀찮았다. 그냥 잠시 쉬고 싶었다.
여태껏 많지도 않지만 적지도 않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진짜 휴식을 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쉬는 시간에도 항상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잠을 자는 것도 그 다음에 뭔가를 하기 위해서였고,
휴식을 취하고 피로를 푸는 것도 그 다음 행동을 위해서였다.
여행을 떠나는 것도 재충전이라는 알쏭달쏭한 타이틀을 내걸어야만 했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릴 때도 뭔가 준비하고, 뭔가 하는 척 해야만 했다.
완전한 휴식은 있을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어리석어서 그럴 수 없었던 것일까.
한 번 쯤은 진짜 휴식을 위한 휴식을 취해 보고 싶다.
하늘은 가리라고 있는 것이 아닌데...
축 처져 있었다. 여기까지 반나절. 이제 다시 나간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간 곳은 쯔루하시.
쯔루하시 어딘가에서 밥을 먹고, 일행은 쯔루하시를 돌았다.
꽉 짜여진 일정을 하루 종일 돌겠지.
이때쯤... 아웃렛 의자에 앉아 잠도 좀 잤고,
더 이상 의미 없이 따라다니기도 싫고 해서 대열을 이탈했다.
텐노지로 향했다.
한 4킬로미터 정도 걸었던 것 같다.
중간에 어떤 아줌마에게 길을 물어봤는데,
텐노지는 여기서 엄청 멀다며 자전거로 태워 주겠다고 한다.
진심인지 인사치레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맙지만 괜찮다고 했다.
일단 자전거 뒤에 타고 가는 것에 자신이 없고,
무엇보다 이뻐서 부담스러웠다.
시텐노지도 가 보고 싶었는데, 길을 잘 못 들어서 지나치고 말았다.
되돌아가기 귀찮아서 그냥 쭉 텐노지 공원으로 갔다.
텐노지 공원 입구.
도심에 있는 시민공원 성격인데도 입장료를 받는다. (200엔 이었던가...)
공원 입장료와 동물원 입장료는 또 따로 내야 한다.
처음엔 왜 이런 곳까지 돈을 받는가 했지만, 곧 이해가 되었다.
나름대로 가꾸는데 정성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솔직히, 아직 입장료가 아까운 수준이다.
평일이었던가. 의외로 사람도 별로 없었다.
우연히 이정표를 보고 들어가게 된 일본식 정원.
텐노지 공원 안에 있는 정원이다.
여기를 보고 나서야, 입장료가 그리 아깝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하는데 꽤 노력이 필요할 듯 싶었다.
만약... 나중에라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게 된다면,
그리고 혹시나 짝이 될 사람이 생긴다면,
꼭 한 번 다시 오사카를 찾아와서 목 놓아 울고 싶다.
의자에 잠시 넋 놓고 앉아 쉬다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저것은 나를 위한 자리였던가?...
공원에서 사진 찍는 할아버지.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었다.
멀리서 여행 온 것은 아닌 듯 싶었는데...
거의 매일 와서 여기를 찍는 것은 아닐까, 먼저 떠난 아내와 추억을 생각하면서.
언젠가... 무슨 영화에서였던가...
자기 가게 앞 풍경을 몇 십 년 동안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구도로 찍어
사진을 보관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보다,
그렇게 오래 한 곳에 머물 수 있었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지 않았겠나 싶다.
공원 한 귀퉁이 벤치에 앉아, 뿜어져 나오는 물보라를 구경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나자 바로, 한 커플이 저 사이를 뛰어나왔다.
서로 젖은 옷을 하면서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래, 행복은 있을 때 모두 즐겨야 한다, 아낀다고 아껴지는 것이 아니니까.
공원을 나와 신세까이 쪽으로 향했다.
신세까이로 가는 길엔 이런 천막집들이 꽤 많이 널려 있었다.
일본에서 이런 풍경은 처음 보는 것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가끔은 이런 것이 궁금할 때가 있다;
좁은 곳에서도 잘 사는 사람들이, 왜 고시원 같은 것은 아직 없을까라는...
모르지,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일본에도 고시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낱 이방인이 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
저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집도 있고, 자전거도 있으니 노숙자들 보다는 나은 형편일 듯 싶은데...
인기척이 있어도 거의 문은 닫힌 상태였고,
빼꼼이 열린 틈으로 훔쳐 보니,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길을 따라 쭉 돌아나가면 동물원 입구가 나오고, 이 맞은편이 신세까이.
한국어로는 신세계.
1903년 박람회가 열리면서 새롭게 조성된 지역이라 그렇게 이름 붙였다 한다.
그 후 쇠퇴의 길을 걷다가 전쟁 후엔 사람들 발걸음이 거의 끊겼다.
전쟁 중엔 저 옆에 보이는 탑을 철거해서 군수물자로 쓰기도 했는데,
전후 저 탑을 다시 세우면서 다시 하나의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다고 한다.
왠지 여태까지 보던 오사카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 이질적인 분위기.
현재 이 동네엔 마약중독자나 불법거주자가 꽤 많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열악한 시설의 싼 숙소도 많이 있다고 하는데,
가격만 보고 들어가기엔 좀 위험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
말로만 전해 들은 것이니 진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카지노.
한국의 피씨방을 일본의 카지노와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쯔뗀까꾸.
우습게도 파리의 에펠탑을 모방해서 만든 탑이라고 한다.
쯔뗀까꾸는 전망대.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입장료는 600엔 이라고 하는데... 다음을 기약했다.
기어 올라갈 힘이 없었다.
신세까이를 벗어나며 에비스 초를 지나 덴덴타운으로 이어진다.
지하철로 두 코스 쯤 되지 싶다.
오사카에도 도시락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이 있다.
적당한 밤 시간이 되면, 여기에 도시락을 사러 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
여기도 시간 지난 도시락을 싸게 팔아서 그렇다.
여러모로 후쿠오카의 다이에이와는 비교도 안 되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한 도시락을 비교적 싼 값에 살 수 있다.
오사카에는 정말 다이에이가 없는 걸까?
어째서 그게 오사카에 없을 수가 있는 거지?
있다면 그렇게 큰 것을 내가 못 봤을 리는 없는데...
도시락을 사서 숙소에 도착하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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