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18년) 말에 새롭게 공개된 덕수궁 돌담길 구간은, 서울주교좌성당 쪽에서 영국대사관 옆을 지나, 미국대사관저 앞까지 이어진다. 영국대사관 부지가 있는 구간은 덕수궁 안쪽으로 돌아서 가는 형태를 하고 있지만, 어쨌든 이제 덕수궁 돌담길을 온전히 다 둘러볼 수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지만, 이 길을 지나서 미국대사관저 앞으로 나왔다면, 최근에 새롭게 개방한 또 다른 길인 '고종의 길'을 한 번 걸어보는 것도 좋다. 덕수궁 길과 거의 연결되다시피 돼 있어서, 한번에 이어서 걸어보는 코스로 생각할 수 있다.

 

새로 개방한 영국대사관 쪽 덕수궁 돌담길은 이전 글을 참고하자.

 

> 새롭게 개방한 덕수궁 돌담길, 영국대사관 구간 걸어보기

 

 

영국대사관을 지나서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미국대사관저 앞으로 나오면, 작은 문이 하나 보인다. 문 앞으로 가보면 '고종의 길'이라고 표시된 배너가 서 있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까지 이어지는 120m 구간의 이 길은, 2018년 10월 30일부터 정식 공개됐다.

 

 

 

지도에서 파란 선은 최근에 공개된 '덕수궁 돌담길'이고, 빨간선이 '고종의 길'이다.

 

서울주교좌성당 쪽에서 진입해서 걸어가면, 한 번에 두 길 모두 연결해서 걸어볼 수 있다. 길이도 그리 길지 않으니, 잠깐 산책삼아 걸어보기도 좋다. 시간이 없다면 같은 길로 다시 돌아가도 된다.

 

 

'고종의 길'도 개방일과 개방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 덕수궁 관리소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에, 덕수궁 운영일시와 같다고 보면 된다. 입장료는 없고, 입장시간은 다음과 같다.

 

* 화요일-일요일 관람가능 (월요일 비공개)

* 동절기(11월~2월): 09:00 ~ 17:30 (입장마감 17:00)
* 하절기(3월~10월): 09:00 ~ 18:00 (입장마감 17:30)

 

 

 

 

'고종의 길'은 아관파천 당시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할 때 사용했던 길을 문화재청이 복원한 것이다. 길로 들어가는 입구를 정면으로 해서, 왼쪽에는 미국대사관저가 있고, 오른쪽에는 덕수궁 선원전 터가 있다.

 

덕수궁 선원전 영역은 왕들의 어진과 신주 등을 모시던 장소로, 광복 이후에 경기여고와 주한미국대사관저 등의 부지로 사용됐다. 2003년 미국대사관의 기숙사 건립을 하려고 조사하다가, 덕수궁 선원전 영역인 것이 확인됐다.

 

 

덕수궁 영역이라고는 하지만 일부 건물의 기초 흔적 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한창 복원을 진행중이다. 1단계 계획이 2024년까지 흥덕전, 흥복전 권역 복원과 함께 고종의길 복원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복원 계획 중 하나로, 고종의 길이 먼저 공개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양쪽 옆으로 미국대사관저와 복원 중인 터가 있어서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다. 철판으로 임시 장벽을 쳐서 동선을 짜놔서, 길따라 쭉 걸어가면 된다.

 

입구에 들어서서 조금 걸어가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조선저축은행 중역사택이다. 지금은 이 주변에 딱히 볼만 한 것이 없어서 이 건물이 가장 눈에 띈다. 지금은 그렇지만 나중에 이 일대가 복원되면 조금 달라지겠지. 이 건물은 철거 예정이니, 보고싶다면 빨리 가보는게 좋다.

 

 

 

좁은 문과 통로를 지나면 이렇게 빙 돌아서 올라가게 돼 있다. 원래 길이 이렇지는 않았겠지만, 아무래도 미국대사관저가 바로 옆에 있어서 한계가 있었을 테다. 이 담장에서 2.75미터 내에는 어떠한 지상 구조물도 세우지 않는다는 미국과의 조약도 있다.

 

 

 

윗쪽으로 올라오면 복원된 아관파천 길이 나온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은 1896년 2월 11일 비밀리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아관은 러시아 공사관을 뜻하고, 파천은 임금이 도성을 떠나서 난리를 피하는 일을 뜻하는 단어다.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난 이후, 일제와 친일파 세력에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고종은 마침내 아관파천으로 거처를 옮긴다. 1896년 2월 11일 새벽에 경복궁 영추문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했다.

 

 

러시아는 이를 계기로 일본과 협상해서 조선을 공동 점거하고 이권을 나눠갖는 등의 합의를 평화롭게 했다. 이를 본 미국, 영국 등의 열강들은 '기회의 균등(!)'을 외치며, 광산 채굴권, 삼림 채굴권, 철도 부설권 등의 이권들을 평화롭게 나눠가졌다.

 

백성들이 이게 나라냐하고 환궁 요구가 거세지자, 파천 1년 만인 1897년 2월 20일 고종은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으로 환궁했다. 아무래도 이 일대에 열강들의 공사관이 있었으니, 이 동네에 머무는 것이 안전하다 여겼을 테다. 그리고 그해 10월 12일 황제즉위식을 하고, 국호를 대한으로 해서,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본격적인 고종의 길은 크게 볼 거리는 없다. 그냥 길을 따라 걷는다는 의미 정도가 있을 뿐. 그래서 약간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길 끝까지 가서 문으로 나가면 구러시아공사관이 있는 정동공원이 바로 나온다. 물론 정동공원 쪽에서 들어가도 된다.

 

 

 

사실 고종의 길은 고증에 대한 논란부터, 지나치게 고종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등 이런저런 말이 많다. 하지만 이 길은 경향신문사에서 덕수궁까지 이어진 정동길에 여러가지 구한말 분위기의 건물들이 많으니, 그 분위기를 이어서 테마로 구성해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아예 정동길 전체를 구한말 테마로 조성해나가는 것도 관광용으로 좋겠고.

 

그리고 새롭게 공개한 덕수궁 돌담길과 함께 이어져서, 이 일대를 구경하는 새로운 길이 하나 연결된 것이니, 그냥 실용적인 차원에서 길 하나가 생겼다고 생각해도 좋을 테다. 앞으로 좀 더 복원하고 꾸미기에 따라서, 또 하나의 관광지 혹은 탐방 루트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어쨌든 정동공원. 언덕 위에 구 러시아 공사관의 종탑이 보인다. 원래 러시아 공사관은 궁전 같이 멋있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모두 사라지고 종탑만 남은 상태다.

 

1990년에 한국과 소련이 재수교를 하고, 이 자리에 소련 대사관을 지으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바로 앞에 미국대사관저가 있으니, 미국이 가만히 있을리가 있나. 뭐, 결국은 잘 된 일이다. 이 터에 러시아 대사관이 들어섰다면, 고종의 길 같은 것 하려면 일이 더 복잡했을 테니까.

 

 

 

 

 

영어로 "King's Road"라고 적혀 있지만, 그 어감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고종의 길. 걷는 내내 '을씨년스럽다'는 느낌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아직 공사중인 모습이 많이 보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백년이 지난다 한들 이 길에 스며있는 느낌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을 테다.

 

 

 

정동공원에서 캐나다 대사관 쪽으로 해서 큰길로 나오면 바로 정동길이다. 여기서는 각자 알아서 재미있는 일을 찾아가면 될 정도로 선택지가 많은데, 이왕 을씨년스러워진 김에 을사조약이 체결된 현장인 '중명전'으로 가면 하나의 테마가 된다.

 

중명전은 다음 글에 계속.

 

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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