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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넘버 23] 지구별을 여행하는 동물통제원을 위한 소설책
    리뷰 2007. 3. 16. 14:49
    어느날 우연히 아내가 서점에서 발견한 '넘버23'이라는 소설책을 생일 선물로 받게 된 월터(짐 캐리). 숫자 23의 헤어 나올 수 없는 마수에 빠져 살인을 저지르는 소설 속 주인공이 자신의 삶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는 것에 놀라, 월터는 점점 더 소설과 숫자 23에 집착하게 된다. 생각하면 할 수록 숫자 23은 자신의 삶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 급기야는 자신이 아내를 죽일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빠져, 소설책의 비밀을 찾아 나서는 월터. 후반부에 가서는 놀랄 수도 있을 만 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발견하는 숫자 23의 비밀에 동조를 하며 혹 할 수도 있을 테다. 인간의 체세포도 23쌍,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의 23개, 주요 테러 사건 발생일도 잘 조합하면 23이 나오고, 히로시마 원폭 투하일도 잘 조합하니 23이 나온다. 이에 더해 주인공은 자신이 태어난 시간의 합, 부인과 처음 만난 나이, 만난 날짜의 합 등이 모두 23이어서, 23이라는 숫자에 둘러 싸인 자기 자신의 삶을 깨달으며 더욱 그 숫자에 집착하게 된다. 새삼 새롭지도 않은 운명이었지만.

    여기서 숫자 23을 성공이나 돈 등으로 한 번 대치시켜 보자. 집착, 독선, 아집, 열망.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과 수집 의욕은 가히 열정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열정이 과연 옳거나 정당하거나 제대로 된 것인가가 문제 아닐까. 23이 꼭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저마다 집착하고 있는 그 어떤 것으로 대치될 때, 그 섬뜩함에 뒤를 한 번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집착하고 있는 동안에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 오지 않고, 그 어떤 다른 가능성도 배제한 채 그 속으로만 깊이 깊이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게 마련이니까.

    사실 숫자에 대한 이런 류의 강박관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영화에서 수퍼컴퓨터(deep thought)가 '삶과 우주와 모든 것에 대한 해답(Ultimate Answer to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으로 42라는 숫자를 내 놓았다. 그리고 이 숫자와 연관된 사건들을 찾아 모으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이 있다(엑스파일의 멀더의 방 번호가 42였다라는 등).

    지금 당장 생각 나는 아무 숫자나 하나 떠올려서 그 숫자에 한 번 집착해 보라. 세상 모든 일들을 그 숫자에 끼워 맞추려고 들면 정말 신기하게도 어떻게든 끼워 맞출 수가 있다. 필요한 건 사칙연산으로 요리조리 숫자를 조합하는 능력 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집착하고 있는 어떤 것 또한 그런 류의 일은 아닐까. 별 쓸 데 없는 일을 크게 부풀려 걱정하며 집착하고 있는게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나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는 고맙다. 또한 이상하게 찌그러뜨린 얼굴로 웃기기의 대명사인 짐 캐리가 새로운 장르로 새롭게 변신해서 나타난 것도 관심 가지고 볼 만 했다. 혹시 짐 캐리라는 이름만 보고, 이 영화가 코미디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면 걱정 접어 두셔도 좋다.

    하지만 뭔가 확 와 닿는 것 없이, 그저 그런 퍼즐풀이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이 든 건 왜일까. 배우의 연기력이 나빴던 것도 아니고, 구성과 화면이 지루하거나 진부한 것도 별로 아니었는데. 연속되는 23이라는 숫자에 대한 강박관념에 지쳐버려서일까, 아니면 그리 새롭지 않은 이야기에 시큰둥해서 였을까. 어쩌면 스릴러이지만 스릴 있는 장면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긴장 없이 맥이 탁 풀려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영화였다. 차라리 넘버 42였다면 내용에 좀 더 집중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졌을 수 있었을 텐데.

    * 마야인이 인류 멸망의 날로 예언 했다는 2012년 12월 23일에 관심이 간다.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기대 되네.

    (www.emptydre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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