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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 화려하고 스릴있고 찝찝하다
    리뷰 2007. 3. 19. 04:52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얼핏 들었을 페르시아전쟁 중 테르모필레 전투가 이 영화의 소재이다. 만화를 영화로 충실히 옮겼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중간에 현실인지 애니메이션인지 헷깔리는 스타일리쉬한 부분들이 자주 나오며, 다소 과장되고 판타지적인 요소들도 많이 나온다. 그런 장면들이 화면을 더욱 자극적이고 인상적이게 만드는 데 플러스 요인이 되는 건 사실이다. 특별한 스토리 없이 피 튀기며 죽고 죽이는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건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새로운 판타지를 만들어 냈다고 말 해야 옳을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잔인하고도 화려한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일단 시원한 쾌감은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보면서 계속 찝찝한 느낌이 드는 것이 문제다. 엄연히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 했다고 홍보를 했으니까 그 고증과 표현에 관한 부분도 이 영화에서 약간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딱 한 가지만 묻자. 대체 왜 페르시아 군대에는 제대로 된 인간들이 하나도 없고, 모두 지옥에서 걸어 나온 듯 한 괴물들만 있는 건가.

    페르시아전쟁의 발발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페르시아 영토였던 이오니아 지방에서 반란이 도화선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오니아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당연히 페르시아가 이를 진압했는데, 그 때 그리스에서 반란을 지원했다는 이유이다. 그래서 마라톤 전쟁이 일어났고, 그 다음에 바로 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테르모필레 전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모르고 그냥 이 영화를 볼 경우엔 어떤 사태가 발생할 수 있을까. 생긴 것도 악귀같이 생긴 페르시아인들이 세상을 점령하여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기 위해 아무 이유도 없이 쳐들어 오는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되기 딱 알맞다. 인간사, 특히 전쟁에서 선악의 개념은 상반되는 것임을 안다면, 이 전쟁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도 절대악이란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여기서는 페르시아는 악의 축이고 그리스(서방세계)는 정의를 수호하는 자들이라는 등식이 세워져 있다. 이것만 봐도 이 영화, 좀 위험한 요소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영화에서는 왕이 군대를 끌고 나가는데 어째서 겨우 삼백 명 밖에 데리고 가지 않느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이 미흡하다. 아무리 주위에서 왕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단 왕인데 말이다. 물론 그걸 다 설명했다면 영화가 좀 지루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스파르타는 두 명의 왕이 서로 견제하며 통치하는 체제였다. 게다가 원로원과 귀족들도 왕을 견제했기 때문에 왕이 절대권력을 가지지 못 했다. 그래서 레오니다스 왕 아래 모인 삼 백명은, 그 왕과 뜻을 같이 한 동지인 것이다.

    스파르타는 원래 다른 국가 일에는 별 간섭을 안 했다. 아테네가 망하든 말든 알 바 아니고, 다른 도시국가들은 잠재적인 적일 뿐이었다. 그런데 페르시아가 쳐들어오자 레오니다스 왕은 이들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외부에서 큰 혼란이 생기면 스파르타 역시 안전하지 못 하리라는 것인데, 큰 문제중 하나가 노예들의 반란이었다. 혼란을 틈 타 노예들이 대규모 반란이라도 일으킨다면 스파르타는 망하진 않는다 하더라도 손실이 엄청날 것임이 틀림 없었다. 그래서 왠만하면 잘 나가지 않는 원정 전투를 나간 것이고, 그에 동조한 사람들만 이끌고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스파르타 인들은 무슨 자유와 명예와 가족 등을 위해 싸운다는 말을 외치는데, 그들은 원래 노예들을 혹독하게 부려 먹기로 소문난 사람들이었다. 노예들이 모든 일을 다 하도록 부려 먹으면서, 그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킬 낌새를 보이면 암살자를 보내 죽여버리는 그런 것은 당연히 영화에선 일절 나오지 않는다. 스파르타 구성원 중 대다수가 노예들이었고, 그 위에 군림하는 지배층은 그 노예들을 통제하기 위해 그렇게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막강한 군대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다. 모든 생산활동은 노예들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노예들을 통제하는 데만 집중했던 스파르탄. 영화에서는 그 수퍼 히어로의 지저분한 일상 생활은 아예 보여주지 않는다.

    사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영화임이 틀림 없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치더라도, 기껏해야 강해지자라거나 동료와 협동을 잘하자 정도니까. 아니, 그것까지도 필요 없다. 그저 치고 받고 피 튀기며 때려 부수고 죽이는 잔인한 영상미를 마음껏 즐기기만 하면 되니까.

    그래, 영상을 즐기기 위한 오락용 영화일 뿐이다. 그러니 삼백 대 백만이라는 다소 과장된 숫자도 영화니까 하며 그냥 넘어가자. 스파르타 인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그런 것도 그냥 넘어가고. 무슨 이유로 전쟁이 일어 났는지, 무슨 이유로 전쟁에 참가했는지도 그냥 다 넘어가자. 물론 이 전쟁 후에 무슨 일이 또 벌어졌는지도 몰라도 되겠다.

    그런데 앞서도 말 했지만, 정말정말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왜, 어째서 페르시아 군대가 악마 집단인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너무하다. 그 당시 페르시아는 아주 잘 나가는 찬란한 문명이었다. 그리스에 비교해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이건 어딘가 모르게 좀 억울하다. 언제까지나 서양인들의 눈에는 동양은 그저 환상적인 곳이거나 미개한 곳 둘 중 하나일 뿐인가. 게다가 (18세 관람가이지만) 역사에 별 관심 없는 어린 애들이 이걸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페르시아는 지금 이란쪽인데, 악귀같이 생긴 그 녀석들이 중동인들의 조상이라고? 화려한 영상 시원하게 잘 봤다라고 마무리 짓기엔 너무나 찝찝하고 씁쓸함이 많이 남는 영화였다.

    * 영화 보면서 쓸 데 없이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진행이 박진감있고 스릴 넘치지는 않았다. 전투 장면은 정말 시선을 확 잡아 끌면서 스릴이 넘쳤지만, 일단 전투가 끝나면 좀 지루한 감이 있었다. 특히 인물들의 대화 장면은 너무 정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전투 장면이 너무 액티브 해서 대비가 되어서 그랬던 걸까.

    * 영화 중간에 페르시아 왕을 보면서 몇몇 사업가들이 떠올라 쓴 미소를 짓게 했다. 자기 목적을 위해 처음엔 살살 꼬득이면서 감언이설을 풀어 놓다가, 뜻대로 안 되니까 버럭 화를 내며 저주를 퍼 붓는 그 꼬락서니. 내가 아는 많은 사업가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해서 웃기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 왕인 크세르크세스가 저런 사람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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