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유목민 형 인간이 한 곳에 붙박혀서 정착민처럼 살려니 아주 미쳐버리겠는 거 있지.
아, 그래, 누구나 그러하듯이 누구나 그런 것 같은 일상을 사는 것 뿐이라구.
하지만 어느날 문득, 계절이 바뀜을 알리는 바람의 냄새가 저 먼 하늘을 꿰뚫고
내 가슴을 비수같이 찔러 시린 마음 가눌 수 없이 휘청거리게 흔들어 놓았을 때,
아 이제 더 이렇게 버티기는 힘 들구나라는 걸 직감해 버렸다는 거지.
내가 마지막 여행을 갔다 온 게 언제였더라하며 먼 추억 되뇌이는 듯 기억해 보니,
사실 몇 달이 채 되지도 않았어 그 사이에도 조그만 여행들을 수시로 했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어쩔 수 없는 바람의 냄새 때문에 그 기억이 떠오르고 말았다는 거야.
바짝 마른 흙먼지가 푸석푸석하게 날리는 어느 여름 오전,
레Leh의 어느 구석방에서 늦은 잠을 깨어 바라본 그 따스하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햇살.
아, 이 곳에서 딱 한 달만 살았으면 좋겠다라며 다시 눈을 감아버린 그 여름의 따스한 시간.
바람의 냄새가 온 몸에 녹아 퍼지면서 이미 오래전 잊혀진 기억을 일깨워 주었고,
마치 본능처럼 뼈마디 구석구석 각인된 기억들은 내 몸을 다시 길 위에 내던져 버리겠지.
길 가에 흔들리는 들꽃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언제든 앞뒤 생각없이 떠날 수 있다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