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동남아 삽질 여행 6

민폐끼치기



사실은 방콕에서 버터워스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여정이 피곤하고 힘들어서, 페낭섬에 가서 한 이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한 번에 목적지까지 직행으로 간 것도 아니고, 중간에 여기저기서 차를 여러번 갈아타며 갔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어서 아주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

그렇게 좋지 않은 컨디션의 몸을 이끌고 무리를 해서 바로 KL(콸라룸푸르)로 가기로 마음 먹은 것은, 우연히 동행하게 된 인도네시아 청년 때문이었다. 이 청년은 한국인 NGO 단체에서 활동을 하는 멤버라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아프가니스탄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집으로 가기 전에 KL에 있는 사무실에 들러서 이런저런 일을 조금 하고 가야한다고.

어차피 KL에 있는 사무실에서 숙식할 예정이니까, 함께 숙식하며 시내 구경을 하자고 해서 흔쾌히 승낙했다. 그래서 좀 힘들긴 했지만 바로 KL로 직행했던 것.




(새벽 4시. 생전 처음 가 보는 말레이시아의 콸라룸푸르의 첫인상은 이런 모습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귀찮은 작업 중 하나가 바로 숙소 구하기이다. 숙소 구하기는 운 좋으면 한 시간 안에 끝 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아주 귀찮은 작업.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사는데 별 도움도 되지 않는 무의미한 작업 (나름 재미 붙이면 재미있을 때도 있긴 하지만).

하룻밤 자기 위한 장소를 고르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말자고 늘 다짐하지만, 싸면서도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숙소를 고르다보면 그렇게 대충 할 수도 없다. 어떤 때는 ‘오늘 밤은 또 어디서 자야할까’를 고민하다가 울컥 서글픈 마음이 북받쳐 오를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도무지 어디서 묵어야 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정말 별 수 없이 노숙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숙소잡기는 상당히 피곤한 작업이고, 정해놓은 숙소 없이 이동할 때는 다소 불안정한 상태.

이미 숙소가 해결 돼 있는 상황이라면 여행은 더욱 즐거울 수 있다. 아니, 즐거운 건 둘째치고 일단 편할 수 있는 건 확실하다. 그래서 단지 숙소가 해결된다는 것만으로도 걔를 따라갈 이유는 충분했다.




버터워스에서 밤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새벽 4시 즘에 KL의 푸두라야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여기서 택시를 타고 암팡(Ampang)이라는 곳에 있는 사무실을 찾아갔다.

이 즘에서 KL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아마 대부분 KL이 콸라룸푸르의 약자라는 것을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말레이시아의 수도는 콸라룸푸르인데, 현지인들은 종종 이 이름을 줄여서 KL이라고 부른다.
 
특히 장거리 버스를 탈 때, 승객을 꽉꽉 채우기 위해 차표 파는 사람들이 목적지를 외치면서 호객을 하는데, 이 때 KL이라고 외치면 그게 바로 콸라룸푸르 가는 버스.

KL을 영어식 발음 그대로 ‘케이엘’이라고 하면 그나마 알아듣기 편하지만, 말레이시아식 영어로 현지인들은 ‘께이엘’이라고 발음한다. 그나마도 ‘께이엘’이라고 해 주면 그런데로 알아듣기 편한데, 이걸 또 줄여서 ‘껠’에 가깝게 발음 해 버리는데... 이 즘 되면 그냥 눈치로 알아들어야 한다.

앞으로 이 여행기에서도 콸라룸푸르는 그냥 KL로 표기하도록 하겠다. 타이핑 수가 엄청나게 차이가 많이 나니까.




암팡은 코리아타운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KL을 서울과 비교하면, 암팡은 분당 정도 된다. KL 중심가와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지만, 꽤 큰 동네라서 교통은 좋은 편. 하지만 아무리 교통이 좋은 곳이라 하더라도 새벽 4시에는 어쩔 수 없이 택시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버스터미널 앞에 많은 택시들이 대기해 있고, 호객도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서 있는 택시는 비싸다며 큰 길로 나가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기본적으로 말레이시아 택시들도 미터기는 달려 있는 것 같지만, 흥정을 해야만 했다. 시간이 그래서 그런지,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적당한 가격으로 흥정해서 갔다. 나중에 확인해 봤는데 현지인 가격으로 택시 탄 거라고 (가격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음).

그렇게 새벽 다섯 시 즘 돼서 찾아간 사무실. 사무실이라길래 나는, 낮에만 사람들이 일 하고 밤에는 아무도 없는 그런 사무실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곳은 KL로 파견 나온 가족이 생활을 하는 가정집이었고, 거실 일부가 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형태. 그걸 보고는 심히 부담이 갔지만, 어쩌겠는가 그 시간에, 그냥 대충 씻고는 내어주는 자리에 누워 바로 골아떨어졌다.




(암팡 시내 어느 상가 주변 길거리 모습.)



(여기도 노점들이 조금 있긴 하지만, 그리 많이 발달한 편은 아니다. 우리나라 수준 정도.)



(이발소라기보다는 머리공장이랄까. 벽에 붙어있는 사진으로 헤어스타일을 고르지만, 결국 모든 사람이 똑같은 헤어스타일이 된다. 동남아 쪽 남자들은 늙으나 젊으나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 인도네시아 애 같은 경우는, 그 무거운 짐들 한쪽 구석에 헤어젤을 챙겨 넣고 다닐 정도였다. 남자 머리 깎는 데 8링깃. 참고로 말레이시아에서는 미용실에서 남자 머리 깎아주지 않는다. (아 그냥 나처럼 자기 머리는 자기가 자르라고~ ㅡㅅㅡ/))



(이발 소 근처 거리 모습. 머리 깎는 것 기다리면서 심심했다.)








오전 10시 즘 부시시 일어나 차려주는 밥 먹고는 노닥거렸다. 여행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이미 한 달은 여행 한 것 같은 피곤함. 푹 퍼져서 그냥 뒹굴거리고 싶었지만 남의 집이라 그러기도 좀 힘들었다. 그래도 뜨거운 햇살 피하고 오후 4시 즘 돼서 시내 구경을 나서는 여유로움. 민폐를 끼치려면 확실히 끼치자는 이 야무짐.  

이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처음으로 사진을 백업 했는데, 이번 여행 때는 집에서 사용하던 100기가 짜리 노트북용 외장형 하드디스크를 들고 갔다. 지난 여행 때 SD메모리 카드를 두 번이나 날려 먹은 기억이 있어서, 이제는 그때그때 자주 백업을 해 둘 생각이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이건 괜찮은 방법이다. SD 카드 보다는 그래도 하드디스크가 조금 더 믿을 만 하니까. 게다가 자주 비워주면 용량 걱정하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좋기도 하고. 물론, 중간에 SD 카드 리더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사진을 많이 찍는 여행자라면 이런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암팡 타운 모습.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코리아타운인지 확실히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가 코리아타운 근처라고 한다. 여행자에겐 크게 흥미있을 만 한 게 없는 동네.)



(암팡 시내 어느 다세대 주택 모습. 네모난 성냥곽을 탈피한 입체적인 모습이 인상깊었다.)




타운 안의 큰 수퍼 안쪽에 있는 환전소에서 일단 환전을 하고, 그 유명한 KLCC 타워를 보러 갔다. 이 날 암팡에서 환율은 100달러가 354링깃 (100 USD = 354 MYR).
(지금 한국돈 환율이 너무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한국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이 여행기에서는 기준 통화를 미국 달러로 잡을 테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




(암팡에서 KLCC 가는 버스. 버스는 수시로 다니고, 거의 아무거나 잡아타도 된다.)



(여기가 KL타워. 이름만 들으면 뭔가 싶어도, 사진을 보면 '아, 이거~' 할 정도로 유명한 곳. 가운데 있는 건물 사이의 통로(다리)까지 올라가서 관람을 할 수 있기는 한데, 거기 올라가려면 새벽부터 줄 서서 기다려서 입장권을 받아야 한다. 물론 나는 포기. ㅡㅅㅡ)




숙소를 나설 때, 오늘이 '디파발리'라는 인도의 큰 명절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는, 그럼 뭔가 행사같은 걸 볼 수 있겠네요 했더니, 명절이라 사람들이 인도로 다 떠나고 그런 건 없을 거라고. 휴일이 며칠 되기 때문에 고향 갈 사람들 다 가버려서 시내가 조용할 거란다. 췟. 역시나 밤에 드문드문 폭죽 터뜨리는 사람들이 있을 뿐, 명절이라고 특별히 대단한 볼 거리가 더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말레이시아가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인도, 중국, 아랍 명절을 모두 국경일로 정해놓고 쉰다는 것. 다민족국가답게 말레이시아에서는 인도사원과 중국사원, 아랍 쪽 사원들, 그리고 교회나 성당을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데도 인종갈등 같은 것이 거의 없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참고로 한국인들도 KL에만 3만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는 아름다운 해변도 있고, 발전한 도시도 있고, 호젓한 중소도시에서 휴양을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말레이시아를 여행하며 볼 것은,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고, 그렇게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이 신기하기도 하니까.




(차이나타운 야시장 입구 모습. 규모가 그리 크진 않다.)







암팡에서 KLCC까지 버스요금은 1링깃. KLCC에서 차이나타운까지 LRT(전철) 요금은 1.6링깃. 차이나타운의 노점에서 닭국수와 콜라가 7링깃. 길거리에서 산 반팔 티셔츠가 5링깃 (티셔츠가 태국보다 쌌다). 콜라 1.5리터짜리 패트병 하나가 3.4링깃. (링깃 아래 단위는 센. 100센은 1링깃. 3.4링깃이면 3링깃 40센.)

1링깃씩 쓰다보니 막 생각없이 쓰게 됐다. 아무래도 숫자 크기 탓인 것 같다. 태국에서 10밧이면 그래도 10이라는 단위니까 조금 생각하게 되는데, 말레이시아에서 1링깃 하니까 숫자가 작아 보이면서 ‘에이, 1인데’하면서 막 쓰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숙소비가 안 나갔기 때문에 이 날 하루종일 쓴 돈은 25링깃이 전부였다.




(차이나타운 야시장은 지붕이 있는 아케이드 형식으로 돼 있다. 문제는 비는 막을지 모르겠지만 바람은 안 분다는 거. 무지 덥다. ;ㅁ;)



(동남아 국가답게 열대과일도 많고, 한국에 비하면 엄청 싸긴 하지만, 태국에 비하면 비싼 편.)



(야시장은 음식, 옷, 짝퉁 등으로 파트가 나누어져 있다. 인도네시아 애가 옷 거리로 가서 옷을 사려고 했는데, 가격 때문에 고민하고 있자 주인이 '달러가 아니고 링깃이야! 이 거지새끼야!'라고 욕 하는 바람에 대판 싸울 뻔 했다. 꼭 그 일 때문이 아니라도, 차이나타운의 야시장은 기본적으로 친절하고는 거리가 아주 멀다. 전체적으로 아주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편.)




일반적인 여행자라면 암팡의 코리아타운을 갈 필요는 없다. 별 볼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인 숙박업소가 많은 것도 아니니까 (있기는 있다고 들었는데 잘 모르겠다). KL에 가서 숙소를 정해야 한다면 가장 쉬운 것은 푸두라야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숙소에서 묵는 것. 버스터미널을 나와서 큰 길 가를 한번 쭉 둘러보면 숙소들이 꽤 있기 때문에 찾기 쉽다.

차이나타운에도 숙소가 많다. 그 쪽은 야시장이 서기 때문에 밤에 놀기 좋은 곳. 버스터미널에서 차이나타운으로 바로 가는 LRT(전철)를 탈 수 있기 때문에, 전철 다니는 시간에 도착했다면 차이나타운으로 바로 가 보는 것도 좋다. 그 외에도 여행자들을 위한 구역이 몇 군데 더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은 그 두 군데 뿐. 그것만해도 하루이틀 묵어가기는 충분할 듯 싶다.

그렇게 시골 촌놈 서울 구경하듯 시내 구경하고 차이나타운 야시장 구경하는 것으로 하루 일정 종료. 이건 여행도 아니고, 관광도 아니고, 휴양도 아니고, 치료하다가 잠시 바람쐬러 나간 느낌.




(차이나타운 야시장 한쪽 귀퉁이에서 팔고 있는 강아지. 자기가 팔려고 내 놓은 상품이라는 걸 알까?)



(차이나타운 근처에도 중국사원, 인도사원, 아랍사원 등이 좀 있다. 하지만 난 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에~)



(먹거리들이 모여있는 곳은 또 따로 있다. 굳이 어느 쪽이다라고 말 해 주지 않아도 야시장을 좀 구경하다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야시장이 그리 넓지도 않으니까. 이 근처에 여행자 숙소가 많은데, 가격은 좀 비싸 보였다.)



(먹자파티로 하루 마감. 이런 하루는 정말 보람차고 즐거워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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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