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번을 가도 적응 안 되긴 마찬가지지만, 처음으로 방콕을 방문한다면 정말 그 더위를 어떻게 이겨낼 방법이 없다.
제일 좋은 건 여유로운 서양인 여행자들처럼, 느즈막이 일어나서는 오후를 카페 같은 곳에서 죽치고 앉아 보내는 거다. 그 후 해 질 무렵 즘 조금 돌아다니다가 밤에는 술파티. 이렇게 보내면 그나마 재미있게 보낼 수는 있는데, 보람이 없잖아. 그래서 보람 찾을려고 한 낮 땡볕에 돌아다니다 보면, 살만 타는 게 아니라 뼈도 탈 듯 한 더위, 이른바 뼈와 살이 타는 낮. ㅡㅅㅡ;;;
그런 이유로 방콕은 그냥 스쳐 지나는 곳으로 여길 뿐, 오래 머물지 않는 편이다. 방콕은 생각보다 꽤 큰 도시라서, 아무래도 자동차 매연 같은 것이 그 곳 공기를 더욱 덥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방콕은 흐느적거리며 재충전하고 쉬기는 좋은 곳이지만, 적당히 쉬었으면 떠나야만 할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위를 피하려고 옮겨간 곳이 바로 치앙마이(Chiang Mai)였다. 인구는 20만 정도 밖에 안 되지만, 그 인구의 몇 배나 되는 관광객들이 해마다 찾아가는, 태국 북부지역에 있는 태국 제 2의 도시다. 북쪽 산악지대에 있기 때문에 한낮에도 방콕보다는 시원한 편이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기까지 하다.
방콕에서 밤차를 타고 밤새 달려 새벽녘에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치앙마이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렸고,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방콕의 찜통같은 더위에 시달렸던 나는, 치망마이의 서늘한 날씨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첫인상을 좋게 가진 치앙마이는, 그 후 몇번의 방문 후에 태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가 되었다.
어쨌든 빡빡한 일정을 쪼개서 온 거라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아침에 어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트레킹을 알아봤고, 마침 오늘 아침에 떠나는 게 있다고 해서 바로 떠났다. 도착하자마자 방도 안 잡고 짐 그대로 들고 트래킹을 가게 된 것. 짐이라고 해봤자 5 킬로그램도 안 되니까 가능한 일.
바로 티켓 끊고 조금 기다려서 트럭 타고 트래킹을 떠났다. 치앙마이 외곽으로 벗어나 한참 길을 달리다가 어느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취하며 밥을 먹었다. 이 휴게소에서 물통 매고 다니는 끈(?)을 샀는데, 얼마 하지도 않는 허름한 물통 끈이지만, 이 때 산 것을 지금까지 아주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여행하다보면 탐내는 사람들도 많고.
트럭 사진에서 트럭 맨 뒤에 놓여있는 물통을 잘 보면 끈으로 둘러싸여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게 바로 물통 끈. 주로 트래킹 가는 길목이나 그 근처 가게 등에서 판매한다. 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었음. (하다보니 끈 자랑. ㅡㅅㅡ; 어디서 샀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서)
물론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과 한 팀이 돼서 트래킹을 했다. 총 열 명 정도 되는 인원이 함께 했는데, 동양인은 나를 포함해 두 명 뿐이었다. 다른 한 분은 한국인 여자분. 치앙마이까지는 친구 두 명이랑 같이 왔는데, 아무도 트래킹 안 가려 해서 혼자 왔단다.
트럭 타고 가면서 서로 한국인인 것 알고는 우리 둘이 한국말로 막 떠들다보니, 주위가 조용한 걸 느낄 수 있었다. 아, 우리만 너무 떠들었구나 하고 대화를 멈추니까, 서양인들이 한국말이 랩 송 같다고 얘기 더 하란다. ㅡㅅㅡ;;;
원수도 안 지나가는 외나무 다리. 아 이것 좀 무섭더라. ㅠ.ㅠ
트래킹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산도 그리 높은 곳을 타지 않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였고. 근데 덩치는 산만 한 서양애들은 왜그리 못 걷는지. ㅡㅅㅡ
폭포 주변에서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이런 데서 쉬게되면, 보통의 서양애들은 옷 벗어던지고 폭포에서 다이빙을 하거나 그러는데, 이 날 만났던 사람들은 참 얌전했다. 쉬라고 하니까 그냥 물 주변에 앉아 쉬기만 했다.
트래킹 하다가 들르게 된 어느 사원. 원래는 이 즘에서 촌장을 만나 물담배를 피기도 한다는데, 마침 촌장님이 시내에 볼 일 있어 나갔단다. 내가 가면 꼭 이래. ㅠ.ㅠ
트래킹 하다가 어떤 조그만 마을에도 들렀다. 가이드는 치앙마이에서 오다가 잠시 들른 휴게소에서 이미 사탕 몇 봉지를 샀고, 그걸 꼬마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미리 준비한 다른 사람들도 풍선이나 사탕같은 걸 나누어주기도 했다. 여기 애들이 찢어지게 가난하기 때문에 그런다기 보다는, 트래킹 오는 사람들이 없으면 사탕같은 것 구경하기가 힘드니까 그러는 거라고 이해하면 된다. 한 마디로, 불쌍해서가 아니라 귀여우니까 주는 거다. 얘네들은 거지 아니다.
다 쓰러져가는 판자집 아래 도요타가 떡하니 있고. 차만 보면 나보다 형편이 나은 듯.
트래킹 하는 사람들이 한두번 지나간 건 아닐테지.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아이들이 보고는 쫓아나온다. 거의 동네 꼬마들이 다 몰려 나오는데, 그래봤자 열 명도 안 됐다. 얘네들이 더 귀여운건, 다른 관광지의 애들처럼 뭔가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 막 쫓아나와서는 말도 안 하고 그냥 베시시 웃기만 한다. 사실 그게 더 무섭지만. ㅡㅅㅡ;;;
관광객들이 와도 별 반응 없이 자기 하던 일 계속 하는 꼬마들도 있다. 사탕 주면 훽 뿌리치고 가버리는 애들도 있고. 그래도 대부분은 사탕 받으면 막 기뻐하며 좋아하며 방긋방긋 웃을... 것 같지? 그런 애도 별로 없다. 대부분은 사탕같은 걸 받아도 '이 사람들이 왜 이런 걸 주지?', '먹어도 되는 건가?'라는 식으로 그냥 멀뚱멀뚱 보고 서 있는다. 먹는거라고 직접 시범을 보여주면 그 때서야 자기들도 먹고. 그런 모습 때문에 더욱 정이 갔던 곳이었다.
이 꼬마, 자존심이 상당히 강했다. 사탕을 손이 쥐어줘도 훽 뿌리치고, 깡통에 넣어줘도 땅바닥에 버리고. 그래, 그런 자세가 좋긴 하지. ㅡㅅㅡ;;;
이런 숲을 계속 걸어갔다. 등산 안 하다가 하면 숲이 모두 이런 식으로 보인다.
드디어 저녁.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는 않았지만, 산 속 어느 허름하지만 큰 오두막집에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한 명 이었지만, 다른 길로 올라왔는지 오두막에 도착해보니 한 사람 더 올라와서 미리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뭔가 거든다고 주위에 붙었지만, 얘네들 집에서 음식 별로 안 해 본 솜씨란 거 탄로나기만 했다. ㅡㅅㅡ;;;
음식은 거의 진수성찬이었고, 밥 먹는 동안 해가 졌다. 식재료 가지고 오면서 갖고 왔는지, 맥주도 한 캔씩 나눠줬고, 밤에는 맥주 들고 캠프파이어를 했다. 이 때가 북한에 뭔 일이 있었던가 그랬다. 그래서 얘기하다가 북핵문제 나와갖고 머리 깨지는 줄 알았네. ㅡㅅㅡ;;;
결론은 미국이 나쁘다로 판결 (미국인은 하나도 없었다)날 뻔 했으나, 이상하게 대화가 비틀어지더니 결국은 프랑스가 나쁘다로 끝맺음 (어째서 그렇게 됐는지는 나도 모름). 유럽 사람들이 프랑스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던 날이었다.
캠프 파이어가 꺼지면 완전 깜깜한 어둠. 하늘에 별과 달 말고는 정말 불빛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잠은 오두막 안에 쳐 진 모기장 안에서 담요 깔고 자는데, 한 모기장 안에 두 명씩 잔다. 가이드가 그러는데, 코 고는 사람은 입구 쪽 자리를 준단다. 그래야 추워서 자주 깨곤 해서 코를 오래 안 골게 된다고. 다행히도 이 날 우리 일행 중에는 코 고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데서 자는 게 익숙하지 못한지 밤새 한 숨도 못 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