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트래킹 둘째 날 아침. 산 속의 아침은 치앙마이 시내보다 더 쌀쌀해서 누가 깨우지 않아도 저절로 눈을 뜨게 됐다. 그래도 일어나서 밖에 나가보니 이미 대부분은 다 일어나 있는 상태였다. 말 들어보니 잠자리가 불편해서 밤 새도록 뒤척거린 사람들도 많았나보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침대만 없다 뿐이지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숙박시설이었는데. 모기장도 쳐 줬고. 근데 모기장만 치면 뭐하나, 바닥이 나무로 돼 있는데 판자 사이로 구멍이 듬성듬성 나 있는데. 그나마 밤 새도록 앞마당에 연기를 피워놔서 그런지 모기한테 그리 많이 물리진 않았다.
간단하게 아침밥 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산등성이를 따라 트래킹이 계속되었는데, 나와 다른 한국인 여자분은 1박 2일 코스로 왔기 때문에 점심때 즘 일행과 헤어져 하산해야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2박 3일 코스로 온 사람들이란다. 아아 나도 2박 3일로 왔으면 이쁜 아일랜드 아낙과 좀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일랜드 애랑 음악 쪽으로 코드가 맞아서 얘길 좀 나눴는데, 안타깝게도 U2나 엔야는 아일랜드에서 거의 노땅 취급 받는 듯 했다.
고산지대라 하길래 뾰족한 산들이 솟아 있을 줄 알았는데, 트래킹 코스를 일부러 그렇게 택해서 그런지 몰라도, 생각보다는 산세가 매끄러웠다. 산등성이를 타고 가니까 마치 길이 물 흐르듯 흘러 있어 걷기 좋은 코스였다. 중간중간 마을도 있고 길도 잘 돼 있어서 그리 힘든 것 없는 길이었지만, 가이드와 함께가 아니면 등반할 수 없는 곳이라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우왕~ 어두워서 사진이 흔들리긴 했지만, 딱 내 취향이다~ 이담에 크면 다시 찾아갈께. ㅡㅅㅡ;;;
산등성이 어느 조그만 마을에 있던 식당 겸 가게. 옛날 어릴 때 동네 구멍가게에서 하던 뽑기가 여기 있었다. 한 번 뽑는데 1밧. 경품이 몇 개 뜯겨져 나간 걸 보면 당첨이 되기도 하나보다. 이 가게에서 밥 먹고 일행과 헤어져 우린 하산했다.
하산하는 길에 이런 뗏목을 탔다. 모두 트래킹 요금에 포함되어 있는 코스. 2박 3일 짜리 트래킹을 해도 하산할 때 이런 것들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이런 것 때문에 트래킹 요금이 비싸다. 이 때 1박 2일 짜리 트래킹이 1,000 밧 조금 넘었다. 지금은 1,500 밧 정도 한다. 물론 비수기엔 협상이 가능하다.
뗏목을 타고 강 하류까지 대충 즐거울 만큼만 떠내려간다. 강 하류로 내려간 뗏목은 분해해서 다시 차에다 싣고, 상류로 가지고 올라와서 다시 조립한다. 끝없는 반복작업.
뗏목 하나에 뱃사공 한 명이 탑승해서 노를 저어준다. 가이드가 카메라는 미리 맡기고 가는 게 좋을 거라고 해서, (어차피 똑딱이니까) 가이드에게 맡기고 갔다. 그래서 뗏목 타고 내려가면서 사진을 한 장도 찍을 수 없었는데, 그래도 카메라를 가이드에게 맡기길 잘 했다. 장난끼 많은 소년이 노를 저어서 우린 막 물에 빠지고 난리였는데, 카메라를 들고 탔으면 제대로 놀지 못 했을 테니까. 물론 돈 같은 귀중품은 가지고 갔다. 여행할 때 비 맞을 경우나 물에 빠질 경우, 혹은 땀에 젖을 경우 등을 대비해서 항상 여권과 돈은 비닐에 싸 갖고 다닌다.
뗏목놀이가 끝나면 이번엔 코끼리 타기 체험. 어떤 가이드북엔 코끼리를 타고 숲을 헤쳐나간다고 쓰여져 있기도 한데, 우리가 탄 건 그렇지 않았다. 조그만 산을 타고 올라가서는 다시 내려오는 코스였는데, 산 허리를 한 바퀴 빙 돌아서 탑승한 곳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코끼리를 타고 산길을 올라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험이었고.
태국 북부지역에는, 한 때는 공연이나 산업용 등으로 많이 쓰였던 코끼리들이 이제 쓸모가 없어지면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설들이 몇 군데 있다고 한다. 여기도 그런 곳들 중 한 군데였다.
한국인 여자분과 나 말고도 멕시코에서 온 부부가 다른 코끼리를 타고 우리와 함께 길을 갔다. 멕시코에서 태국까지 오는 데 거의 24시간 걸렸고,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탔다고 한다. 이 부부와 함께 하산해서 치앙마이 시내까지 함께 차를 타고 갔다.
어쨌든 날이 더워서 그런지, 먹을 걸 못 먹어서 그런지, 코끼리들이 자꾸 딴짓을 하려 했다. 이 날 낮 시간이 좀 덥긴 했다.
코끼리 몰이꾼은 코끼리 머리에 올라타서 몰이를 한다. 근데 좀 끔찍했던 건, 거의 낫 같이 생긴 도구로 코끼리 머리를 팍팍 찔러서 방향을 조정하거나 코끼리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 저러다 머리에서 피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힘껏 내려찍었다. 코끼리 가죽이 두꺼워서 그렇게 해야 신호를 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누가 머리를 쿡쿡 찔러대면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을 듯 했다. ㅠ.ㅠ
산길을 오르면서 숨을 씩씩 몰아쉬며 한 걸음 한 걸음 보기에도 힘 든 발걸음을 옮길 때는 정말, 산 한 바퀴 다 안 돌고 그냥 중간에 내리고 싶을 정도였다. 이제 코끼리는 다시는 타고 싶지 않아. ;ㅁ;
드디어 코끼리 등에 내렸다. 멕시코 부부가 바나나를 꺼내 드니까 우리에게로 돌격하는 코끼리. 윽- 결국은 바나나만 강탈(?)해 갔지만 거의 뛰다시피 달려들 땐 정말 무서웠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코끼리 발에 밟힌 사람을 본 적 있었는데, 한 방에 두개골이 반 쪽 났던데. ㅠ.ㅠ
어쨌든 이렇게 1박 2일의 짧은 트래킹이 끝났다. 고산족을 만나보지 못해서 약간 아쉬운 감도 있었지만, 그래도 짧은 일정에 치앙마이 트래킹을 대충 맛 볼 수 있었다. 치앙마이 트래킹은 등산과 각종 놀이를 즐기는 재미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세계 사람들과 함께 즐기면서 대화 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데 중점을 둔다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치앙마이에 도착하니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시간낭비 하기 싫어서, 대충 내려주는 데서 숙소를 잡고 짐을 풀었다. 그리고 시간 맞춰서 바로 '칸똑 쇼 (Khan Tok Dinner Show)'를 보러 갔다.
칸똑은 태국 북부지역의 전통 식사를 뜻한다고 한다. '칸'은 그릇을 뜻하고, '똑'은 밥상을 뜻한다는데, 말 그대로 밥상 하나에 접시 여러개를 보기좋게 올려놓은 저녁식사다. 우리나라에서 쟁반에 밥과 반찬을 잘 배치해서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음식은 그리 맛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공연은 볼 만 했다. 너른 마당 가장자리에 구경꾼들이 밥상을 받아놓고 둘러앉아 있고, 가운데 무대에 공연자들이 나와서 북부지역의 전통 춤을 보여주는 형태였다.
내가 들어가니 이미 쇼가 어느정도 진행된 상태.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쇼가 그리 긴 시간동안 진행되진 않았다. 그래도 밥 먹으면서 구경하기엔 그럭저럭 괜찮은 편.
공연이 끝나니 객석의 사람들을 불러내서 함께 춤을 추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나라 마당놀이 형식과 비슷했다. 마당놀이도 날을 잘 택해서 가면 파전과 막걸리를 나눠주기도 한다. 물론 칸똑 쇼는 입장료에 음식값이 다 포함된 거지만.
어쨌든 짧은 시간동안 관객과 춤을 추고 나면 마무리 인사를 하고 모두 다 퇴장한다. 근데 놀라웠던 건, 관객들도 쇼가 끝나니까 모두 다 일어나서 나가버렸다는 것. 정말 순식간에 큰 마당이 텅 비어버렸다.
공연 끝난지 오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마당은 사진처럼 텅 비어버렸다. 이미 손님들의 밥상도 직원들이 다 치워버린 상태. 공연 끝나도 천천히 밥 먹고 얘기 나누겠지 하며 여유를 부렸던 나는 졸지에 다급해졌다.
내 밥상에 아직 음식이 가득가득 남아있는 것이 보인다. 아직 반도 못 먹었다. ㅠ.ㅠ
주위를 둘러봐도 밥 먹는 사람이 하나도 없길래, 나 혼자 먹고 있기도 좀 그렇고 해서 나도 황급히 일어났다. 아, 물론 당연히 음식을 버릴 수능 없다. 마침 세븐일레븐 비닐봉지가 있어서 다 넣어서 싸들고 왔다. ㅡㅅㅡV
비닐봉지에 음식 가득 담아서는 음식냄새 풀풀 풍기며 칸똑 쇼 행사장을 나왔다. 이거 숙소에 들고 가서 혼자 방 안에서 먹으면 좀 불쌍해 보이니까, 어디 경치 좋은 데 찾아가자라는 생각에 치앙마이 야시장을 찾아갔다. 왜 그 상황에 야시장을 찾아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 때는 나름 무슨 생각이 있었겠지. ㅡㅅㅡ;;;
치앙마이 야시장. 대충 분위기가 이렇다는 것만 보여주기 위한 사진 몇 장. 걷다보니 Vhiang Ping cultural market 인가 하는 데가 나왔는데, 거기 야외 바들이 분위기가 괜찮길래 칵테일 몇 잔과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태국에서는 트로피칼 칵테일을 한 번 맛보기 바란다. 과일주스가 아니라 생과일을 그대로 갈아서 넣기 때문에, 과일 들어가는 건 대체로 다 맛있는 편이다.
이벤트로 암벽타기 행사같은 걸 했던 모양. 무슨 대회라는 플랜카드가 붙어져 있었는데, 밤이라서 암벽 타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 때 이후론 한 번도 이 암벽을 본 적이 없다. 한시적으로 잠깐 했던 이벤트였나...
아침에 산 타고 내려온 사람치고는 꽤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어차피 잠은 밤에 자면 되니까.
밥도 먹었겠다, 술도 마셨겠다, 돌아다니느라 피곤하기도 하겠다, 잠을 푹 잘 수 있는 조건은 모두 갖춰진 셈. 그래서 숙소로 돌아가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새벽녘에 잠을 깨고 말았다.
지진. 지진이었다. 지진에 꽤 민감한 편인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가끔 지진을 느낀다. 간혹 지진이 느껴져서 잠에서 깰 때도 있는데, 이 때 치앙마이에서도 지진때문에 잠이 깼다. 아주 미약한 지진도 누워있을 때는 마치 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어지러움을 느끼니까.
새벽부터 조그만 진동이 살짝살짝 느껴지더니, 아침 즘에는 탁자 위에 올려둔 물통에 진동이 올 정도였다. 근데 다음날 숙소 주인이나, 주변의 다른 여행객들에게 '지진이 좀 심하지 않았냐'고 물어봤더니, 나 말고는 지진을 느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둔감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사실 치앙마이 오기 전에 방콕의 카오산에서 식당인가 카페인가에서 만나서 조금 친해진 어떤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한국인이었고 나이도 다들 비슷해서 급속도로 친해졌는데, 그 사람들은 태국 남부 쪽의 해변으로 갈 예정이었다. 나도 같이 남쪽으로 가서 바다에서 놀자고 했지만, 웬지 그게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혼자 태국 북쪽의 치앙마이로 오게 됐고, 내가 치앙마이로 떠나는 날 그들은 태국 남부 해변으로 떠났다.
그리고 며칠 뒤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치앙마이에서는 좀 예민한 사람들이나 느낄 만큼의 진동 뿐이었지만, 태국 남부 지역에서는 수많은 집들이 파손되고, 사람들이 죽기도 했다. 쓰나미 사태라며 전 세계가 떠들썩했던 바로 그 사건이었다. 나는 나중에 치앙마이에서 다시 방콕으로 돌아갔을 때 티비를 보고는 그런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그걸 보고는 카오산에서 함께 놀았던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안타깝게도 소식을 알 방법이 없었다. 이 때만 해도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연락처를 거의 주고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그런 기억 때문에 난 아직도 태국 남부 쪽 해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