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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 미친 세상의, 목숨보다 중요한 책 - 일라이
    리뷰 2010. 5. 9. 03:21
    * 스포일러 있음.



    전쟁으로 세상이 멸망한지 몇십년 후, 주인공 '일라이'가 서쪽으로 책을 운반한다는 내용의 영화. 영화 초반에는 책의 존재를 감추지만, 그 책이 무슨 책인지는 금방 드러난다. 물 한 모금 얻어 마시기도 어려운 멸망한 세상 속에서, 목숨 걸고 지키려는 책이 설마 요리책은 아닐 테니까. 





    일라이는 소위 말하는 계시를 받고 그 책을 서쪽으로 운반하는 소임을 맡았다. 마치 그 일을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된 전사처럼, 다가오는 많은 적들을 혼자서 무자비하게 무찌르면서 말이다. 강도 셋 정도는 눈 깜빡 할 사이에 해치울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무심하다. 자신의 임무는 오직 책을 운반하는 것 뿐이니까.

    카네기는 그 책의 위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 책을 이용하면 자신의 권위를 높일 수 있고, 절대적인 지위를 얻어 사람들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물'이라는 물질적인 것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지만, '더욱 강한 힘을 얻고, 더욱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그 책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미 멸망하기 전 세상에서 그 위력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게 됐다. 당연히 헌 책 줄게, 새 책 다오 하며 평화롭게 이야기가 진행되지는 않는다. 책을 지키려는 자, 책을 빼앗으려는 자 사이에 이른바 '성전'이라 할 수 있는 전쟁이 벌어진다. 이미 세상을 멸망시킨 예전의 전쟁에 어떤 종교적인 이유가 있었음을 암시했었는데, 다시 이 책 하나로 무고한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나가는 또다른 작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키는 자, 빼앗는 자, 누가 더 나을 것 없이 둘 다 무자비하며, 조금의 양보도 없다. 아니 오히려 빼앗으려는 자는 회유의 손길이라도 보냈는데, 지키려는 자는 아예 타협의 여지조차 없다. 사람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책을 빼앗는 자나, 무조건 옮겨야 하니까 수단방법 가릴 것 없이 운반하는 자나 '맹목적'이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둘 다 '책'이 인간의 목숨보다 중요하다.

    '카네기'의 말에 따르면, 지난 세상에서 이 '책'을 가진 자들이 그러한 귄위와 권력과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힘' 앞에 복종했다 한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런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도 있는 그 책. 그런데 일라이가 결국 도착한 '제대로 된 세상'에서는 그 책을 다른 책들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그 마지막 장면이 어쩌면 마지막 반전일 수도 있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성대한 종교적 행사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도서관 한 쪽 책꽂이에, 다른 책들과 나란히 진열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세상에서 '책'을 다룸이 어떠해야 하는지, 감독은 그걸 말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중요하고 귀중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이용해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거나, 어떤 이득을 얻는 데 사용하지 않는 이성적인 세상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p.s.
    * 영화 소개에 bELIeve in hope, rELIgion is power, dELIver us 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종교적 색채가 강한 영화다. 하지만 서구 중심적인 구원 영화라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지금의 종교 상황을 비판하는 영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런 색채가 강하다는 면에서, 그런 내용이 부담스러운 분들은 좀 껄끄러울 듯.

    * 우리나라 영화 포스터의 낚시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참 거시기하다. 영화를 보아도 이건 '인류의 운명을 건 대결' 정도는 아닌데 말이다.

    * 영화에서는 못 봤는데, 영화 내용 설명에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2043년 이라 한다. 그리고 그 해는 대전쟁이 있은 후 31년이 지난 해라고. 그래서 결국 계산해 보면, 2012년에 멸망한다는 깊은 뜻이... ㅡㅅ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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