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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 전체가 땅굴 진지인 제주도 가마오름 - 제주평화박물관
    국내여행/제주도 2010. 11. 26. 17:33

    아름다운 섬으로, 걷기 좋은 섬으로 알려져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제주도. 내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 특히 중국, 일본 사람들도 많이들 찾는 국제적인 명소다. 그런 제주도도 한때 암흑의 역사 속에서 어둡고 슬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과거들 중 하나가 일제침략기였다.

    한일병합 당시, 제주도 또한 일제의 침략을 비켜갈 수 없었다. 그 중 가마오름이라는 곳에는, 일제가 제주도민들을 강제징용해서 만든 땅굴 진지가 구축되었다. 다른 오름과는 달리 시야가 확 트여서, 주변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이유로 그곳에 그런 진지가 만들어졌다 한다.

    그 당시 강제로 노역했던 사람들을 기리고, 전쟁의 비참함을 알리는 동시에 평화를 외치기 위해, 가마오름 기슭에는 조그만 규모로 '제주평화박물관'이 세워졌다.




    제주평화박물관 건물을 지나 다시 밖으로 나가면, 가마오름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오름은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산책로 정도의 산길. 길 옆으로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아득히 먼 경치와 어울려 눈처럼 하얗게 내려 앉은 메밀꽃. 아픈 과거를 덮고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말 하고 있는 듯 하기도 하고, 오히려 옛 기억을 잊지 못해 눈물로 호소하는 듯 하기도 한 모습.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가던 길 멈추고 바라보고 있노라니, 한 편으론 또 애잔함에 마음이 저며오는 야릇한 풍경이었다.

    이곳에서 흘렸던 사람들의 눈물처럼, 이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영혼처럼, 그렇게 새하얗고 창백한 꽃밭을 옆으로 끼고 오르니 이내 시커먼 땅굴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마오름 땅굴은 총연장 약 2,000 미터에 달하는 땅굴이다. 1, 2, 3층으로 이루어진 구조로 가마오름 전체가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오름 주변으로만 출입구 33개가 있는데, 땅굴은 한 두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의 통로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통로들을 따라가 보면, 10평 남짓한 방과, 회의실, 숙소, 의무실 등의 공간들을 볼 수 있다. 땅굴이지만 별다른 환기 시설 없이 항상 신선한 공기가 유지되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이 땅굴을 만든 것이 바로 그 당시 강제로 차출된 제주도민들이었다.

    가마오름 땅굴들 중 제1땅굴 340여 미터 정도가 복원되어 있어, 이 구간을 관람객들이 들어가 구경할 수 있다. 구간에 따라 통로가 갑자기 꺾여서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넓이나 높이가 좁거나 낮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관람하기 좋게 하나의 길만 따라가면 되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혹시라도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입구부터 안내표를 따라 쭉 따라 가다보면, 저절로 출구로 나갈 수 있는 방식이다.

    통로를 따라가다보면 구석구석에 만들어진 방들을 볼 수 있다. 각종 자료와 증언, 추정 등으로 밝혀낸 각 방의 용도는, 마네킹을 이용해 표현해 놓았기 때문에 한 눈에 보고 이해하기 쉽다.  







    가마오름 땅굴진지를 보다 보면, 세워놓은 마네킹도 그렇고, 복원한 통로도 그렇고, 뭔가 조금 허름하고 비어 보인다는 느낌이 든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제주평화박물관은 이영근 관장이 전재산을 쏟아부어 만든 사설박물관이기 때문이다. 박물관 건물 뿐만 아니라 가마오름 땅굴진지 또한, 직접 공사에 관여하고 스스로 만들어 냈다.

    이런 박물관을 만들었다면 으례, 부자겠거니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영근 관장은 부자는 커녕, 생계를 위해 관광버스 운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놓고 또 조금씩 기회 되는 데로 일을 진행해 가고 있다 한다. 

    그가 이 박물관을 만들게 된 계기는, 부친이 이 땅굴을 만드는 데 강제징용을 당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부친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고, 아울러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이곳에 박물관을 만들었다 한다.

    그는 그당시 땅굴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생활상과, 노역에 시달렸던 생존자들의 증언, 그리고 땅굴에 대한 여러가지 자료 등을 약 10년 동안 수집하고 다녔다. 그렇게 고생해서 가마오름의 땅굴 중 일부를 복원하고 평화체험 학습장을 조성했지만, 아직 제주도나 정부에서 이렇다 할 지원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 사연들을 듣고 나면 조금 허름하고 엉성한 것도 모두 감탄으로 변한다. 한 개인이 혼자의 힘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오히려 미쳤다는 욕을 들어가며, 오랜 시간을 노력해서 이만큼이나 만들어 냈다. 그 정성과 노력과 끈기와 인내가 감탄스러울 뿐이다.







    제주평화박물관의 큰 볼거리는 가마오름에 일부 복원되어 있는 땅굴이지만, 박물관 실내에도 수많은 서적들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군복을 비롯한 각종 장비들과, 제주도민들이 사용했던 물건들도 전시되어 있어서 박물관의 구색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박물관 건물 규모나 시설 등이 미비해서, 전시실은 좀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예산확보나 지원금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어, 수장고에 있는 유물들과 자료들을 모두 전시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 수많은 유산과 자료들이 창고 속에서만 잠자고 있다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전쟁은 끝나고 꽃은 피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생을 이었다. 역사적 사건 때문에 이유없는 반감으로 지나치게 비분강개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사실을 잊고 살아가서도 안 된다.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 있다면 또 새롭게 밝혀내고 규명해야 할 테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역사를 너무나 소홀히 대하고 있다. 아름다운 경치와, 화려한 경관과, 재미있는 놀거리도 좋지만, 이런 역사적 현장 또한 잘 보존하고 간수해야 할 문화적 유산인데 말이다.

    요즘 세상, 아무리 역사적 유물이라도 돈 안 되면 깨 부수는 세상이다. 그래도 이 가마오름 땅굴은 좀 더 크게 개발하고 꾸며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관광자원으로 볼 때도 비참한 역사적 현장 또한 잘 보존하고 조금 꾸며서 내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명한 관광지가 될 수 있으니까.

    가마오름 땅굴 진지 일부 구간을 탄광처럼 레일을 놓고 미니 트램으로 구경을 할 수 있게 한다면, 색다른 역사유적 관광코스로 각광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거기다가 가마오름 자체도 경관이 수려한 편이니, 이 주변도 잘 꾸미면 아름답게 꾸밀 수 있을 테다. 그런 식으로 평화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좋은 자원인데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니. 어쩌면 제주엔 관광자원이 워낙 많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박물관 건물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앉을 수 있는 강당이 있었다. 수학여행 간 학생들이 여기를 많이 찾아가는 모양이었다. 말씀을 들어보니 한국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일본 학생들도 많이들 찾아왔다고 한다.

    강당 벽을 빙 둘러서 흰 광목에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그 중 한 부분에는 한라산과 후지산, 태산이 그려진 모습이 보였다. 일본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이 후지산과 한라산을 함께 그리며 평화를 기원했는데, 후에 중국 학생들이 자기네도 빠질 수 없다며 태산을 그려넣었다 한다.

    다른 그 어떤 메시지들 보다도, 세 나라의 세 개의 산이 한군데 그려져서 평화를 기원하는 그 메시지야 말로, 이 제주평화박물관이 추구하는 목표이고 또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싶다.





    욕설과 비방, 비난과 나쁜 말, 그리고 흠집내기와 싸움, 그리고 무조건적인 반감만으로는 좋은 일을 기대할 수 없다. 인간사가 다 그러하듯, 역사도 그렇고, 평화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블로그도 그렇다. 네가티브는 정권이 바뀌어도 네가티브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 항상 삐딱한 시선으로는, 창조가 상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늘 불만에 찬 시선으로만 세상을 보는 사람은, 맞서 싸워야 할 때에도 싸우러 간 사람을 욕 할 뿐이다. 맞서 싸워야 할 때는 싸우더라도,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음을,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원해 보자.



    제주평화박물관 홈페이지 : http://www.peacemuseum.co.kr/






    p.s.
    제주평화박물관과 그냥 평화박물관은 완전히 다른 곳이다.
    그런데 둘을 함께 놓고 보면, 아이러니 속의 재미랄까, 기분이 묘하게 착찹해진다.
    평화박물관은 베트남 전쟁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운동을 주로 하는 단체.
    시간 나면 일제의 학살을 상기하면서, 또 다른 일면을 한 번 구경해 보자.
    평화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peacemuseu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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