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커뮤니티 사이트 트래블로(Travelro)가 이태원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열었다. '천의 얼굴 인디아'라는 주제로 이태원의 '카레타운'이라는 인도식당에서 열린 이번 모임은, 인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모여서 자유롭게 인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안면인식장애자의 즐거운 인생


지난 도곡동 모임에 이어 이번 모임에도 나온 사람들 거의 90%가 초면인 사람들이었다. 나를 본 적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좀 있긴 있었지만 그건 너네 사정이고, 나는 모르겠거든!

사람들에게 내가 '안면인식장애'가 있다고 말 하면 농담인 줄 안다. 그나마 요즘은 예전에 신해철 씨가 '안면인식장애'라고 말을 했던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그런 것이 있나 보다 하고 사람들이 알기는 안다. 그런데 그게 알려지기 전에는 사람들이 내가 무슨 알츠하이머 병에 걸렸거나, 튀어 보이려고 그러는가 하며 재수없다 여기기도 했다.



이런 장애 때문에 대학 때는 싸가지 없다는 말도 가끔 듣기도 했는데, 인사를 잘 안 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닐 순 없지 않은가. 난 정말 누군지 모르겠는데, 길 가는 사람이 갑자기 자기가 선배란다. 처음 몇 번은 당황스러웠지만, 나중엔 의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개발했다. 뭔가 인생과 자연과 우주에 대한 깊은 고뇌에 빠져 미처 알아보지 못 했다는 듯이, 그제서야 알아차렸다는 듯이 유유히 인사를 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상대는 나의 고뇌 타임에 끼어듦을 오히려 미안해 하곤 했다.

그걸 고쳐보려고 남들 모르게 연습장에 초상화를 그려 봤지만, 그리면 뭐 하나 일주일 지나면 '이건 누구?' 하게 되는데. 그래서 한 때는 그냥 감으로 콕 찍어서 아는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이 오면 무조건 아는 척을 하기도 했다. 과 건물 근처에서 아무나 붙잡고 아는 척 했을 때,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일 경우는 확률적으로 50퍼센트. 그래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아는척 했다가 미친놈 소리를 좀 듣기도 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나는 유니버서티에서 유니버셜하게 초 학교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어, 날마다 술판에 불려 다니는 아주 쓸 데 없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나는 철학을 하기 시작한거다, 고뇌에 차서 사람들이 나를 봐도 못 본 척 넘어가 주길 바라면서. 옆구리에 니체나 칸트 하나 끼고 다니며 고개 푹 숙이고 다니면 고뇌에 찬 거라고 봐 주더라. 이따금 도서관에서 책 잘 못 뽑아서 자본론 끼고 다니다가 경찰한테 불려 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효과는 있어서, 나름 헌팅도 여러번 당해 봤다. 대학생들은 참고 할 것(?).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길에서 엄마를 못 알아보고 지나친 건 좀 문제가 있다 싶긴 했다. 그 때 엄마의 그 서글픈 눈빛이 잊혀지진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이렇게 낳아 주신 게 바로 당신인 걸. 그래도 안면인식장애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며 애써 위로하며 살아간다. 생각해보라, 어느 길 모퉁이에서 첫사랑을 우연히 딱 마주친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애인과 함께 아주 행복한 표정이다 라는 상황. 아마 한 일주일은 잠 못 들고 마음 싱숭생숭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에겐 그런 거, 없다! 첫사랑 따위 옆집에 살아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이 쯤 되면 다들 부러우실텐데!

그래서 나는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마음 먹고,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니 이 얼마나 기쁘지 아니한가 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굳이 기억도 안 나는데 아는 척 하지 않기로 했고,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난 원래 이러니까 니가 받아 들이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하면서부터 인간관계가 쿨 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쿨 하다는 게 꼭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쩌겠나 어쩔 수 없는 것에 자책하며 사느니 그냥 쿨 해지는 쪽을 택하는 게 낫지 않은가.




천의 얼굴 인도


인도라는 곳이 그렇다, 많은 여행자들에게 안면인식장애가 어떤 것인지 조금 체험해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곳이다. 물론 그 곳 사람들이 다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거나 그래서 그런게 아니라, 인도라는 곳이 가도가도 지난번과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굳이 인도를 가보지 못했거나 여러번 가 본 적 없다 하더라도, 언론이나 주위 사람들, 책을 비롯한 미디어 등에서 접하는 인도 또한 그렇다. 저 나라가 그랬던가? 이랬던가? 어째서 이런 일이? 이런 면도 있었나?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들을 접하게 해 주는 곳이 바로 인도다. 물론 그것이 항상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도 아니고,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이번에 트래블로가 인도를 주제로 모임을 가지면서, 인도에 '천의 얼굴을 가진 나라'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알쏭달쏭하지만 그래도 적절하게 잘 표현한 문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모임이 다른 인도 관련 모임보다 특색있고 뜻 깊었던 것은, 인도인들이 참여를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마 많은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혹은 평소 생각하던 것과는 또 다른 측면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일부분만 정리해서 소개하자면 이렇다.



인도는 철학의 나라다? 인도 사람들은 모두 철학자고, 인도에 가면 저절로 도를 닦게 된다는 선입견이 한국에만 (일본에도 조금 있지만) 널리 퍼져 있다. 이 질문에 관한 대답은, 카레타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인도인 주인장의 웃음으로 일단락. 세상에 천사만 사는 나라가 없듯이, 악마만 사는 나라도 없고, 거지만 사는 나라가 없듯이, 철학자만 사는 나라도 없다.

그런데 철학을 하려는 자세를 가진다면 인도가 약간의 이점이 있긴 있다. 아주 종교적인 색체가 강한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지만, 릭샤왈라나 거지들조차 그들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이상한 주장을 펼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장사치들의 언변에는 혀가 내둘릴 정도. 뒤통수를 탁 때리는 뭔가 병신같지만 멋있는 논리를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철학을 할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도는 여유롭다? 이 질문은 모임에 참여한 인도인 청년이 잘 정리해 주었다. 인도도 대도시는 바쁘고, 시골 가면 여유롭다. 그것이 정답. 외국인 여행자들은 여행으로 그 나라를 방문해서 주로 관광지를 돌기 때문에 여유로운 모습들을 구경하는데, 인도에서도 델리나 첸나이, 뱅갈로르 등의 대도시에 가 보면 얼마든지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한국의 남도만 가 보고는 한국은 여유롭다라고 말 해선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



인도에도 한류가 있다? 트레블로의 어여쁜 운영자 한 분이 인도에서 한국 관련 DVD, 브로마이드 같은 것이 있더라며 제기한 질문. 이에 대해 인도관광청 관계자는 그런 것이 조금 있긴 있지만, 아직 한류라고 할 만큼 크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인도 영화에는 왜 집단 안무가 많이 나오는가? 일반적인(?) 인도 영화를 보면 춤과 음악이 굉장히 자주, 많이 나온다. 영화인지 뮤지컬인지 헷깔릴 정도. 이 질문에 대해 어떤 분은, 높은 문맹률과, 다양한 언어,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춤과 음악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분은, 인도가 원래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어쨌든 최근에 한국에 개봉한 영화 '내 이름은 칸'은 인도에서는 큰 흥행을 하진 못했고, 그다지 인도스러운(?) 영화는 아니라는 결론. 나 역시도 '샤롯 칸'이 그렇게 멀쩡하게 나온 모습은 참 어색하더라.




여행쟁이들의 수다시간, 트래블로


공식적으로 인도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에 나온 질문과 답변은 그 정도였는데, 사실 공식적인 시간보다 비공식적인 수다가 더욱 매력적인 모임이었다.

여행쟁이들은 가끔씩 여행 이야기로 미친듯이 수다를 떨고 싶을 때가 있는데,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는 일반인(?)들과 얘기하다보면 서로 갑갑하기 일쑤다.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고, 비슷하게 가 본 곳이 있고 하면 수다에 수다가 더해져 대화는 저어기 멀리 아스트랄한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그렇지 못 할 경우엔 서로 지루한 주제가 되어 차라리 북핵문제를 토론하느니보다 못 한 대화시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래블로가 주최하는 모임은 밥(!)을 주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이렇게 여행 이야기로 몇 시간을 쉼 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참 고맙다. 아무쪼록 이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져서, 다음번에도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여행 이야기를 나누어 봤으면 좋겠다.

자, 부러우면 지는 거다. 이런 모임이 땡기는 분들이라면, 당장 달려가서 활동을 시작해 보자. 이왕 가입 할 거면 아래 주소를 클릭해서 가입하면, 애써 정보를 제공한 나에게 약간 도움이 된다는 거.



가입 할 거면 이 주소 눌러서 하세요(굽신굽신):
http://www.travelro.co.kr/emptydream/come_on




▲ 글은 마치 즐거운 시간이었던 듯 적었지만, 사실은 이렇게 엄숙한 분위기...였었나? 이 분 왜 이런 표정?



▲ 지루함에 드러누운 관계자. 라고 적으면 지탄의 대상이 되려나~?(후훗) 트래블로 운영진들은 인물 보고 뽑는다는 말이 있(을 수도 있)을 정도로 미모들이 대단하신데, 특히 그 중에 아홉시라는 분이 가장 섹시하다. 하지만 내 타입은 아님. 궁금하면 다음에 가서 보세요~



▲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에, 다른 사람들 사진 찍을 때도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을 노린다. 얼굴이 나온 것도 아니고, 안 나온 것도 아닌 절묘한 포착. 이거 나름 계산하고 기다려서 찍는 거다.



▲ 중간에 서 있는 분이 이태원 인도식당 카레타운 주인장. 한국말 아주 잘 하신다. 주말에는 부페식으로 식당이 운영되는데, 인도 현지에서 먹던 맛과 거의 똑같은 맛의 음식들이 나온다. 하루 날 잡고 찾아가서 마음껏 인도 음식을 즐기기에 좋은 곳. 씨름 선수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할 것.



▲ 밥도 주고, 선물도 주고~ 아낌없이 주는 트래블로~ (저는 관계자가 아닙니다. 단지 목마른 사슴에게 물을 주면 보은을 하듯이, 배고픈 백수에게 밥을 주면 결초보은을 한다는 세상의 이치. 이 대목에서 감동 먹어야 함.)



▲ 카레타운에서 놀라웠던 것은 킹피셔 맥주를 팔고 있다는 것. 킹피셔는 인도에서 많이 팔리는 맥주.



▲ 이건 트래블로 운영자분이 사진 좀 찍으라고 구박해서 억지로 찍은 거임. 정말 집에 와서 보니, 이번 모임 사진은 겨우 30장도 채 찍지 않았음. 난 그저 수다 떨기 바빴을 뿐이고~



▲ 이것도 운영자 분이(!) 사진 좀 찍으라 해서 찍은 거임. 근데 창문 너머 타르트 가게가 더욱 눈에 띄었음. 다음엔 꼭!꼭! 카레타운에서 카레 먹고, 타르트로 디저트 해야지! 저 타르트 집, 나름 유명한 곳인데.



▲ 이건 마음에서 우러나와 찍은 거임. 역시 샷이 조금 달라지긴 하는구나~



▲ 지하철 막차 기다리며 길바닥에서 선물 보따리를 풀어 보았음. 인도 관련 모임이라고 카레를 넣어주는 센스~ 하지만 이 시간에 그들은 2차를 했다 함. 나는 몰라서 2차 못 갔고~ 알았어도 집에 가서 잤을거야, 하며 위로를 하지만 그래도 삐친 건 어쩔 수 없음!




참고: 이태원 카레타운 가는 방법
(원래는 모임 장소 알리는 용도였지만, 이제는 카레타운 약도로 활용하자)
http://www.travelro.co.kr/route/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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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제1동 | 이태원 카레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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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