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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근세 유럽의 화려함 -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국립중앙박물관취재파일 2011. 7. 22. 12:20
사람들은 흔히 말하길 '아, 내가 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좀 더 여유롭고, 넉넉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아무리 아름다운 태평성대라도, 한 시대의 절대다수는 가난한 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자유 농민이면 괜찮은 편, 그 시대에 태어나 노예라면 어쩔 텐가. 길거리에 아름다움이 널려 있어도 결코 즐길 수 없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동경 속에 초를 밝혀 움추린 몸 지쳐 잠 들 뿐이다. 물론 현실이 각박하기 때문에, 그것이 환상인 줄 알면서도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동경심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환상은 자유니까.
그렇다면 이왕 착각에 빠질 거, 깊이 푹 빠져서 한 순간이나마 저 아름다운 시절의 귀족이 된 기분을 만끽해 보자. '국립중앙박물관'의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특별전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난 환상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테다.
의복에서 화려함의 진수를 보여주는 바로크 로코코 시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문화' 특별전은, 영국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의 소장품들 중 17-18세기 유물들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바로크 로코코 시대'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유럽이 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춰 가면서 외부 확장을 위한 전쟁 속에서도, 사치스러운 고급문화의 정점을 찍던 시대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전시장에 입장하면 웬 지저분한 사내들 동상이 먼저 눈에 띈다. 머리를 거의 산발을 해서 요즘 시대의 부랑자 같은 느낌이 드는데, 자세히 보면 옷은 단정하고 예쁜 스카프도 둘렀다. 우리 눈에는 무슨 노숙자를 조각했나 싶지만, 그 당시에는 저 모습이 굉장히 깔끔한 모습이라 한다. 단지 수염을 단정하게 깎았다는 이유만으로!
이걸 보면 남자들에겐 그 시대가 좀 살기 편했던 시절이라 할 수도 있겠다. 수염만 깎으면 단정할 수 있었던 시대니까.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에서도 그런 것을 볼 수 있다. 저 모습이 그 대단한 러시아 왕의 모습인가 싶을 정도로 다소 꾀죄죄해 보이지만, 명색이 '러시아도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 훌륭한 문화를 꽃 피우고 있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란다.
그나마 이 시대에는 여행을 위한 면도기 세트가 등장했을 정도로 개인 위생과 단정한 외모를 신경쓰기 시작했다. 물론 머리카락은 베토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거의 산발처럼 해 다녔지만, 화려한 색깔의 옷들을 보면 남자들이 저런 색깔을 소화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더군다나 목 보호와 멋을 위해 둘렀던 스카프의 아름다운 문양은, 딸이 쓰던 것을 두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성스럽고 우아하다. 열악한 그 당시 시대상황 속에서도 나름 규칙과 사회통념 속에서 한껏 치장하고 멋을 부렸음을 알 수 있다.
여자들의 경우는 더하다. 보기에는 예쁘고 화려해 보이는 드레스. 하지만 그 옷의 정체는 3(쓰리)피스다. 이 시대 귀족(혹은 부자) 여인들은 대체로 속바지, 패티코트(코르셋), 슈미제(상의), 앞판, 가운 등을 순서대로 껴 입었다 한다.
그것도 매일 입을 때마다 하녀들이 꿰메 줬다고. 어디 나갈 때마다 그렇게 차려 입어야 하니, 한 번 나가려면 옷 입는 것만 해도 큰 일이다. 내가 그 시대 여인으로 태어났더라면, 그냥 헐렁한 실내복만 입고 밖에 나가기 귀찮아 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헐렁한 실내복이라 해도 요즘 외출복 만큼이나 불편했지만.
티벳 고원이나 몽골 초원의 유목민이 제 아무리 꽃단장을 해도 우리 눈에는 뭔가 어색하고 촌티나게 보이듯, 이들 또한 그런 느낌인 건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여기서 또 생각을 다잡아 봐야 한다. 이들이 촌스럽게 보인다 해도 그건, 지금 우리 시대가 더 우수하기 때문은 아닐 테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유행과 의식의 차이일 뿐, 더 높고 낮음은 없다. 사실 지금 시대도 꽉 짜여진 의복 코드를 생각해 본다면, 그리 많이 나아졌다 할 수만은 없으니까.
전시실 안쪽에 마련된 바로크 로코코 시대 유럽의 실내공간
많은 유물들과 아름다운 장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지만, 이번 특별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그 시대 궁정 내부를 구현해 놓은 전시실이다. 귀한 가구들을 전시해 놓은 것과 함께, 그 시대 분위기가 나게끔 그림도 걸었고, 더 넓은 공간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거울도 많이 장치해 놓았다.
이렇게 화려한 집은, 17-18세기 귀족들의 과시 공간이었다. 파티나 모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세로로 긴 형태로 복도를 만들고, 그 뒷쪽으로 방들이 겹겹이 배치된 형태다. 뒤로 갈수록 사적인 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가구들은 모두 화려한 장식이나 문양들이 새겨져 있고, 모양 또한 한껏 멋을 낸 형태로, 가구 그 자체가 하나의 장식이다. 재료 또한 거북등, 상아, 흑단, 열대나무 등으로 식민지에서 들여온 재료들을 주로 쓰고 있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많이 쓰였다.
그 시대 유럽 사람들은 집을 이렇게 꾸미고 치장하고 해야만 멋있게 보인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한다. 그래서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공간을 꾸며 보여주는 것에 집착했다. 어찌 보면, 그 수많은 혁명과 개혁의 시대를 거쳤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별로 없어 보인다.
어쨌든 전시장 안쪽 깊숙한 곳에 마련된 이 공간은, 그 시대 유럽의 실내 인테리어를 마치 유럽의 어느 큰 집에 들어간 것처럼 꾸며 놓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사실 이런 공간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에 꾸며져 있다는 것 만으로도 조금 놀라웠다. 아무리 시대에 맞게 변해간다 했어도, 아무래도 박물관의 전시는 그저 유물만 나열한 형태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만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다른 수익성 특별전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꾸밈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점점 박물관이라는 단어에서 주는 인상을 깨어 나가기 시작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을 찾게 될 테다.
하지만 아직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제목부터가 좀 박물관스럽지 않은가.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라니, 딱히 큰 문제는 없지만 상당히 학구적인 제목이다. 이 제목을 딱 들으면 뭔가 공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 아닌가.
차라리 퐁파두르 부인을 중심에 놓고 그녀의 이야기를 하나의 축으로 풀어 나갔으면 어떨까 싶었다. 퐁파두르 부인의 이야기와 함께, 그 시대 프랑스와 유럽, 그리고 주변국 이야기 등으로 풀어 나갔으면 좀 더 흥미를 자극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제목은 '왕비가 되고 싶었던 왕의 여자, 퐁파두르' 정도로 하고 말이다. 물론 그것 또한 대중적으로 먹힐지는 알 수 없는 거지만, 그래도 최소한 학구적인 분위기를 많이 벗어나지 않는가.
퐁파두르 부인
퐁파두르 부인은 1744년, 23세의 나이로 루이 15세의 정부가 되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빈털털이가 된 가정에서 자랐으나, 그당시는 부자들이라면 거의 누구나 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적 분위기라서, 어릴 때부터 철저히 부자의 아내가 되는 교육을 받았다.
이미 남편이 있었지만 이혼하고 루이 15세의 정부가 됐고, 후에 나이가 들어서는 전국의 예쁜 처자들을 데리고 와서 루이 15세에게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게다가 왕을 대신해서 앞에 나서서 국정을 운영했고, 그와 함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는 점 등은 부정적인 면으로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그녀가 그 당시 프랑스, 그리고 더 나아가 유럽 전체 예술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콩코드 궁전을 비롯해서 베르사유의 콤피앙 궁전 등 많은 궁전들을 설계하고 건축했는데, 그 궁전들은 유럽 많은 나라들에 영향을 끼쳤다 한다.
게다가 당시 지식인들이 부정적으로 봤던 백과사전 편찬에도 앞장서서 지원을 했고, 장식미술과 도자기 등의 미술 분야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국왕이 문학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퐁파두르 부인은 많은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문학 쪽으로도 지원을 했다. 그래서 문학과 예술 등의 방면으로 많은 지원을 했던 그녀의 초상화에는 그림이나 책 등이 항상 소품으로 등장한다.
이 대목에서 '아아 역시 예술은 부자들의 사치에 일조를 해야만 발전하는 건가'라는 탄식을 내뱉을 수 있지만, 일단 그건 접어두도록 하자. 단지 그런 사람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바로크 로코코' 양식이라는 화려한 예술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 이해하고 넘어가자, 나머지 고뇌는 예술가들의 몫으로 넘기면 되니까.
어쨌든 퐁파두르 부인은, 지금 프랑스 대통령의 공식 관저로 쓰이는 '엘리제 궁전'을 선물 받아 사용했을 정도로 왕의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에서 찾아온 불운인지, 아니면 그녀의 능력의 한계인지, 정치 쪽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7년전쟁과 캐나다에서 영국에게 패배하는 등의 사건을 겪고, 40대 초반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다.
퐁파두르 부인은 그나마 예술 쪽으로 많은 공헌을 한 것을 인정 받는다. 머리를 곱게 뒤로 빗어 넘기는 스타일을 '퐁파두르 풍'이라고 부를 정도로 패션을 주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와 왕이 함께 했던 사치와 향락은, 루이 15세의 며느리인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에 이르러 폭발하고야 말았다.
무엇을 얻는가는 관람자의 몫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나 양식은 민중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다. 그 문화를 이끄는 자들이 귀족이라 할지라도, 그 문화를 받드는 토대는 항상 민중이다. 그렇게 따지면 예술과 문화라는 것, 현세 범인이 먹고 사는 것보다 중요할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렇게 후세에 남을 그 무엇인가가 우리의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저 시대 이후 많은 혁명과 봉기가 일어났는데 지금은 무엇이 변했나라는 의문으로, 깊은 질문과 이 시대에 대한 고찰을 해도 좋다. 반면, 그저 근심을 잊고 마음껏 환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기회로 삼아도 좋다. 저 먼 이국땅에서 건너온 유물들은 저마다의 기억들을 품고 있을 뿐, 그것을 보고 느끼는 것은 온전히 관람자의 몫이니까.
그리고 어쨌든 우리의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계속 살아가니까. 어떤 시각으로 어떻게 즐기든, 각자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즐기고 느끼면 될 뿐이다. 단지 한 가지 말 해 줄 수 있는 것은, 나름대로의 시각을 가지고 하나의 주제를 잡아서 전시물들을 엮어 나간다면, 그냥 줄줄이 보고 나가는 것보다는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관람안내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국립중앙박물관
2011.05.03 ~ 2011.08.28 (수,토: 오후 9시까지)
(8월 15일 특별개관, 8월 16일 휴관)
입장료 성인 1만 원.
* 홈페이지
국립중앙박물관: http://www.museum.go.kr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http://www.baroque201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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