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6월 16일까지 대만현대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국립대만미술관과 전시교류사업으로 열리는 것이라,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옛날 것부터 최근 것까지 한 군데 모아 놓았다.
나름 대만의 현대미술들이 역사와 함께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둘러볼 수 있게 전시를 해 놓은 것 같지만, 사실 대만 역사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깊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대만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군사독재를 거치며 자유화 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을 이 작품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각 작품들을 개별적으로 훑어볼 뿐.
대만은 가본 적도 없고, 크게 관심에 두고 있는 나라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미술 작품들에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어떤 느낌들이 있었다. 화려하게 채색해도 뭔가 좀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랄까. 그와 함께 스스로를 부정하려는 듯 한 느낌들. 전체적으로 대충 그런 느낌들이 흐르고 있었다.
대만이라는 나라를 묘사한 작품이 별로 없어서 좀 아쉽긴 했는데, 사라져가는 풍경이라는 비디오 아트에서는 주제와는 다르게, 대만이라는 나라의 일상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었다. 작가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모든게 서서히 어디론가 흘러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말 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나는 영상에 나오는 집 내부나 골목길 같은 것들이 더 눈에 띄었다.
모임이라는 작품은 어쩌면 흔히 볼 수 있을 듯 한 땡땡이 무늬를 크게 그려놓은 건데, 작가 혼자만 그린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이 작품 중 하나가 메인 포스터로도 사용됐는데, 전혀 이 과정을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큰 땡땡이 무늬다'라고 밖엔 생각되지 않겠지만, 이 작업에 참여했거나 혹은 옆에서 구경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때 그 시간과 장소를 기록한 하나의 레코드였을 테다.
이 전시회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우주는 나의 마음'이라는 작품. 새로운 형태의 수묵화라고 하는데, 수묵화로 추상화를 그렸다 정도로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 하다. 딱 보고 뭔가 우주 공간의 느낌이랄까 허공에 뜬 느낌이랄까 그런게 느껴져서 좋았다. 느낌을 말로 설명할 수가 없네.
아무래도 가장 눈에 띈 작품은 온통 금색을 두르고 있는 '수신공양기념비'. 한글과 한자만 봐서는 뭔지 모르겠던데, 영어로 된 제목을 보니 좀 알 것 같았다. The Monuments with the Sacrifices of Faunas. 한 시대를 지배했던 동물군에 대한 기념비라고 할 수 있다. 공룡이 많이 나오지만, 그것 말고도 이것저것 있다. 대충 제목을 이해하고 보면 눈에 들어온다.
정글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표현이 참 신선하면서도 잘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군의 인간들이 짐승같은 얼굴을 하고 정글에 있는데, 그 사람들 각각도 그렇지만, 이 사람들이 모여있는 그 자체가 정글이다. 좀 더 의미를 넓혀보자면, 세상이 정글, 위험하고 난폭한 세상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몇몇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기에,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정글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은 '당신은 안전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을 수도 있고.
'바람 속의 기억: 논밭'이라는 작품은, 단순히 표현을 색다르게 했을 수도 있지만, 기억이라는 것이 이런 형태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보면 흥미로운 작품이다. 벽에 굳건하게 붙어있는 타일같은 배경과 함께, 원하면 옮길 수도 있지만 절대로 시들지 않는 꽃들과 몇몇 사물과 모습들. 어쩌면 이 오브제들이 정말 인상에 남았다면, 나중에 이 자리에 다른 작품들이 전시되면 이 작품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될 수도 있을 테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짧지만 조용히 미술관 구경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이 전시의 규모가 조금 작은 편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을 만 한 전시이기도 한데다, 딱히 다른 전시도 없었기에, 평일 저녁에 정말 한적하게 미술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입장료도 무료여서 더욱 좋았고.
아무래도 그리 인기가 있을만 한 전시가 아니기 때문에, 주말에 가도 사람이 그리 많이 붐비진 않겠다 싶다. 사람 붐비지 않는 미술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멋이 될 수도 있으니까, 오랜만에 살랑살랑 미술관 바람이 들었을 때 한 번 가보시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