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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비 오는 날의 라이딩 2 - 북한강 자전거 길, 마석역까지국내여행/서울 2015. 11. 24. 12:48
팔당대교 근처는 뭔가 요상한 풍경들이 펼쳐져있다. 이거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건가 아니면 뭔가 신기한 자연물인가. 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평평한 길 너머 강과 마을이 어우러진 모습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주긴 한다. 일단 페달 밟을 동안은 비가 와도 열이 나니까 춥지도 않고. 멈추면 당장 얼어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경치도 경치지만, 길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매일 버스 타고 다니면서 보고 지나치는 옆 동네도, 막상 집에서 걸어가보면 길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하며 신기할 때가 있다.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다니면 이 지점과 저 지점을 따로따로 생각하던 것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하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신기한 경험 말이다. 거기서 길을 좀 헤매면 선은 또 면으로 확장된다. 그게 길치의 장점이다. 개뿔일 수도 있지만 좋게 받아들이면 좋을 수도 있다.
이 동네는 무슨 자전거 교육장도 있네. 무슨 교육을 할런지 궁금하다. 비가 와서 아무도 없고 다 문 닫고 있었지만. 내가 참 날은 잘 선택한단 말야.
드디어 팔당대교. 처음 가는 길이라 이렇게 가는 게 맞나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잘 찾아가긴 했다. 팔당대교 근처엔 길 알려주는 표지판 좀 몇 개 세워줬으면 좋겠다. 대부분이 일자라서 필요없긴 하지만, 주요 갈림길이나 팔당대교 근처에서 올라가는 곳 표시라든가 그런 것들. 초행에다 길치 콤보면 아주 많이 헷갈린다. 방향 감각 좋은 사람들만 자전거 타라는 법은 없잖아.
다리 건너지 않고 쭉 가면 경기도 광주를 지나서 남쪽으로 내려갈 수 있다. 그렇게 가다보면 딱히 빠져나올 길도 없고 날은 저물고 집은 멀어지고 눈물이 나겠지.
그러니까 이젠 북한강 자전거 길을 타기로 한다. 그래야 한 바퀴 빙 돌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신기하게도 해외여행 나가면 집에 다시 돌아가기가 죽기보다 싫은데, 국내여행 나가면 반 나절 쯤 지나면 바로 집에 가고싶어진다. 이걸로 누가 논문 좀 써봐라.
저게 팔당댐이었던가. 옛날에 어쩌다 팔당댐 구경 가본 적도 있었고, 차 타고 지나가다가 본 것도 몇 번 있었는데 그 때 기억과는 또 다르네. 자전거 타고 고생해서 와서 그런가, 아니면 내 기억이 조작된 건가. 기억 속의 팔당댐은 좀 더 뭔가 있어보이는 곳이었는데. 이날 본 건 그냥 슥 스쳐지나도 별 미련 없는 그저 그런 곳.
능내역. 여기는 폐 역사를 관광지로 꾸며놨다. 주변에 먹고 쉬다 갈 수 있는 곳들도 좀 있고. 비가 안 온다면 아무 곳에서나 좀 앉았다 갈 수도 있겠지만, 비가 오니까 돈 없으면 쉴 곳이 별로 없더라. 뭐 그래도 슬금슬금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팔당대교 지나 여기까지 오는 길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중간에 공사 구간도 있었고, 사람들이 떼거지로 모여 노는 술집도 있어서 조금 조심해야 했고 그런 것들이 있긴 했지만, 서울 쪽 한강 자전거 길보다는 훨씬 조용하고 편안한 느낌. 자전거 타는 사람 수도 확 줄어 있었다. 중간에 전국 일주를 하는 듯 한 사람도 보였고.
실내도 사진 같은 것들로 나름 꾸며놨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들어갔더니 매표소에 사람이 있는 것 처럼 보여서 깜짝 놀랐다. 가까이 가보니 사람이 아니더라. 비도 오고 어둑어둑하고 분위기 딱 좋은데. 카메라에 물 들어가서 뭔가 삐그덕거리기도 하고.
비옷에 비가 흠뻑 젖어 있어서 실내 벤치에 앉기는 좀 그랬다. 밖에 나가니 딱히 쉴 곳도 없고. 대충 돌아보고 화장실만 이용하고 다시 출발. 제대로 쉰 건 아까 한강 자전거 길 전망대 벤치에서 뿐이었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 길 가는 내내 어둡기 전에 집에 도착해야만 한다는 생각만 가득해서 뭔가 먹을 기분도 안 나서 결국 집에 갈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물론 집에서 챙겨나온 2리터짜리 물은 빗물 받아가며 마셔야했지만.
아아 철길에 저렇게 벤치도 깔아놨구나. 햇볕 쨍쨍한 주말엔 오면 안 되겠다. 시끌벅적한 거 딱 질색.
낡은 의자는 앉으면 바로 부숴질 것 같았고
좀 더 달리다보니 아주 중요한 갈림길이 나왔다. 양평방향, 춘천-신매대교 방향으로 가는 길이 딱 갈리는 곳. 남한강 길과 북한강 길이 갈린다고 보면 된다. 길 잘 못 타면 여기로 다시 되돌아오는 수 밖에 없는 아주 중요한 곳.
춘천 가는 길 쪽으로 길을 타고 가니 이상한 갈림길들이 또 나온다. 길눈이 어두운 나는 이런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고역이다. 남한강 북한강 길은 그래도 쉽게 구분할 수 있었지만, 그 외 자잘한 길들은 헷갈려서 운에 맡기는 수 밖에 없었다. 아아 길에서 인터넷 되는 부자들은 정말 좋겠다.
이쯤에서 하도 헷갈리는 갈림길이 계속 나오길래 지도가 있어야 할까하고는 자전거 여행 안내소인가 하는 곳에 들어가봤더니, 자전거 길 지도가 삼천 원인가 한단다. 안내소라고 해서 다른 여행 안내소처럼 지도도 무료로 나눠주고 그러는 곳인 줄 알았더니 이름을 그렇게 지은 카페. 아이고 돈 없습니다요 하고 다시 나올 수 밖에. 그것이 가난뱅이의 운명.
핸드폰 인터넷 안 되게 하고 아주 대강 그려진 최소한의 지도만 가지고 여행해보라, 마치 해외여행 나온 것 같은 느낌 든다. 특히 이렇게 비 와서 사람도 하나 안 보일 때 여행하면 더더욱 어느 이상한 반도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뭐 내가 해외여행 하는 것 같은 이국적인 느낌을 가지면 그곳이 이국적인 곳인 거지 별 거 있나. 라고, 가난하면 개고생을 승화시키는 방법도 가지가지로 깨우치게 된다.
아, 비교적 최근에 한 2년 전 쯤에 가본 곳이 나왔다. 두물머리 근처. 이 근방은 자전거 길도 잘 돼 있지만, 평소엔 사람도 많은 곳. 살짝살짝 꺾어진 커브길이 달리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긴 하는데, 이쯤에선 카메라 배터리가 떨어져서 갈아끼우려 해도 비를 피해서 안전하게 갈아끼울만 한 장소가 없다. 지붕 있는 쉼터가 없다는 뜻.
이건 비 올 때보다 여름 땡볕에 더 문제다. 잠시 햇볕 피해 쉬어갈 곳이 없다는 뜻이 되니까. 여름에 여행할 거면 힘 조절 잘 해서 이 동네는 순식간에 쌱 벗어나는 게 좋겠다.
관광지 같은 분위기를 벗어나면 강을 따라 자전거 길이 펼쳐져 있다. 한쪽 옆은 강이고, 한 쪽 옆은 차도다. 차도가 넓고 통행량도 많지 않아서 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린다.
차보다 가까이서 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길이다. 바람은 꽤 불지만. 아무래도 북한강 쪽으로 접어드니 서울 쪽 한강보다는 좀 차가운 느낌이 든다.
한쪽 옆 차도에선 비가 와도 엄청난 속력으로 달리는 차들이 바닥의 물을 양 사방으로 뿌려댄다. 그나마 오른 쪽에 붙어서 차도와 떨어져 가는 게 다행이지, 차도와 딱 붙어서 밑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면 물 엄청 덮어썼을 테다. 저렇게 달리면 도로에 있을 작은 돌멩이도 타이어에 밟혀서 툭 튕겨 나올 수도 있는데. 혹시나 있을 수도 있는 사고를 대비해야 할 곳. 이 구간만 그런게 아니고 앞으로 쭉 그렇다. 자전거 도로가 차도 바로 옆에 있다.
드디어 마석역, 대성리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가 자전거 라이더들에겐 꽤 유명하다는 새터삼거리. 뭔가 볼 게 있다거나 해서 유명한 게 아니라, 북한강 자전거 길과, 구리 쪽에서 나온 길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 계속 북쪽으로 가면 대성리 지나서 춘천까지도 갈 수 있고. 바퀴 바람만 제대로 넣으면 춘천까지도 무리 없을 듯 싶었다.
이렇게 길 건너서 잘 닦여 있는 자전거 길로 들어가면 마석역 쪽으로 갈 수 있다. 이쪽 자전거 길은 올해 초인가, 여름인가에 완전 정비해서 개통했다고 한다.
개통한지 얼마 안 된 길 답게 이런저런 시설들이 아직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런 곳은 되도록 빨리 가서 구경하고 기억에 남겨야 하는데. 나중에 시간 지나면 다 변해버리는데 그게 꼭 안 좋은 쪽으로 변하더라.
마석역 가는 자전거 길은 대체로 잘 닦여 있었다. 바로 옆 차도는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게 돼 있었는데, 자전거 길은 차도와는 별개로 비교적 평평하게 만들어 놓았다. 근데 서울쪽 한강 자전거 길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길은 약간 완만한 오르막길이 계속 되더니만, 여기도 강쪽에서 마석역 쪽으로 가는 길은 꾸준하고 은근한 오르막 길이다. 반대로 진행하면 좋을 듯.
그리고 비가 오기도 했지만 이 동네는 자전거 길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더라. 그러면서 협곡(?) 비슷한 길도 지나야 하고, 좀 을씨년스러운 동네에선 여기저기 험상궂은 개 짖는 소리도 들리고. 약간 공포영화에서 조연배우 죽기 전 분위기랄까.
어쨌든 마석역까지 왔다. 시간만 있으면 더 진행해보고 싶기도 했는데, 이미 짧은 해가 질 때가 다 돼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루종일 해서 한 50킬로미터 정도 달렸나보다. 타이어 바람 상태를 체크하지 않은 게 정말 큰 실수다. 힘은 엄청 썼는데 속도는 하나도 안 나고. 그냥 걷는 것보단 좀 빨랐을 정도.
하루종일 비 맞으며 잘 나가지도 않는 자전거 페달 밟으며 고생고생해서 전철을 탔는데, 사람들은 다들 뽀송뽀송한 옷 입고 편하게 전철타고 한들한들 어디론가 나다니더라. 아 부러워. 어딘가 여행 갔다오면 그래도 난 여행 갔다왔다고 니들은 이런 경험 못했지라고 자랑스러운 느낌 같은 것 느낄 수나 있는데, 이 여정은 도저히 그게 안 나온다. 나중에 기회 되면 바퀴 바람 빵빵하게 넣어서 한 번 더 해보든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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