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 오는 날 아침, 세상이 나를 부르길래 뛰쳐 나갔다. 인생 별 거 있어, 가볍게 자전거나 한 번 타고 오는거지 뭐. 이상하게도 서울 주변 자전거 여행은 별로 안 땡겨서 안 하고 있었는데, 마침 새로 산 9만 원짜리 자전거 개시도 할 겸 해서 가벼운 기분으로 나가봤다. 이것저것 테스트 해 볼 것도 있었고.

 

출발해서 시내를 달릴 때만 해도 크게 이상한 건 못 느꼈다. 시내 빠져나가기가 워낙 신경쓰이는 것도 많고, 속도도 안 나고 해서 그랬을 테다. 그런데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뭔가 많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빠져 있었던 것. 손으로 잡으면 큰 힘 들이지 않았는데도 타이어가 쑥 들어갈 정도.

 

이건 좀 위험하다. 펑크 위험도 있지만 페달 밟기 힘들어서 속도가 나질 않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라는 생각도 잠시 해봤지만, 귀찮다. 귀찮으면 몸이 좀 고생하면 된다. 그래서 몸이 고생했다. 아, 최대 시속 10킬로미터도 안 나면서 이렇게 힘들기는 또 처음이다. 게다가 비도 줄줄.

 

어쨌든 이건 서울 한강 자전거 길과 북한강 자전거 길 약간을 돌아본 기록이다.

 

 

 

대략의 이동 경로. 원래 계획은 한 바퀴 빙 돌아서 다시 집으로 오는 거였는데, 아무래도 속력이 나질 않아서 해 지기 전에 마석역에서 전철 타고 돌아왔다. 비가 와서 그런지 중간에 바람 넣을 곳도 딱히 없더라. 잘 보고 다니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고.

 

 

 

시작은 순조로웠다. 배 고프면 먹을 요량으로 빵도 세 봉지나 샀다. 이것만 거의 만 원 돈.

 

 

 

배 고파서 다 먹었다. 아니, 빵 두 개 남았다. 사온지 십 분 만에 다 먹긴 했지만, 어쨌든 배 고프면 먹으려고 산 것이라 배 고파서 먹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남은 두 개는 출발하기 직전에 집 앞에서 다 먹고 가볍게 출발. 막 쑤셔넣으면 하루종일 배 안 고플거야. 결국 생각이 씨가 돼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

 

 

 

아침.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밤 같은 아침. 이른 아침에 나가면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아아 오늘도 일 하러 나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막 감상도 하고 해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출근 시간 치고는 좀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사실 전날 일기예보로는 오늘 저녁 쯤에 비가 온다 했는데, 이른 아침 출발하자마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믿은 내가 바보지.

 

장한평 역 쪽에서  군자역, 아차산역 등을 지나 천호대교 쪽으로 가는 길에는 틈틈이 자전거 길이 보인다. 도로에 표기해 놓은 것도 있고, 인도에 표기해 놓은 것도 있는데, 연속성이 없어서 자전거 길 찾아 달리려면 좀 짜증난다.

 

 

뭐냐 이건. 막 느닷없이 시작도 없었던 해제 표지판도 나오고.

 

 

 

경사가 그리 급하지도 않은 오르막 길인데도 속도가 안 나서 인도로 끌고 가기도 하고. 근데 차도에 표시된 자전거 길은 그 기능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택시나 승용차들이 주차를 해놓고 있고, 수시로 택시가 갑자기 쓱 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맘 놓고 달리다간 사고나기 딱 좋다.

 

 

 

우여곡절 끝에 천호대교까지 왔다. 쭉 오는데 무슨 공사한다고 돌아가라고 하고, 횡단보도에서 신호 기다렸다가 끌고 갔다가 등등. 시내 벗어나기가 제일 힘들다 정말. 한 4킬로미터 쯤 될까. 그리 큰 경사도 없는데 여기까지 오는데만 거의 한 시간 걸렸다. 이건 바퀴에 바람 제대로 들어가 있어도 마찬가지일 듯.

 

 

 

돈이 없어서 길에선 인터넷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미리 받아온 전체 노선 지도로 봤는데, 대충 보니 이쪽에서 한강 공원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듯 했다. 바로 아래 자전거 길도 잘 깔려 있었고.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내려가는 길이 안 보인다. 차도로 내려가면 어찌어찌 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건 너무 위험하고.

 

 

 

결국 발 밑에 잘 깔린 자전거 길이 있는데도 그걸 뒤로하고 다리를 건넜다. 천호대교는 사람 지나다닐 길이 있긴 있는데, 두 사람이 나란히 서면 아주 좁은 정도의 넓이라, 자전거 타고 건너기도 좀 위험했다. 그날따라 다리 건너는 사람들도 몇 있었고.

 

 

 

아아 건너기 싫어라. 정말 멀게 느껴지더라. 비도 오는데 강 위라 그런지 춥기도 하고. 다음번엔 바로 내려가는 길을 잘 외워뒀다가 써먹어야지. 하지만 다음번엔 이쪽으론 안 오는 게 상책이지 싶다. 시내 벗어나는 게 너무 힘들어서. 특히 지나온 길들이 교통량도 꽤 많은 동네라.

 

 

 

그래도 거의 걸어서 잘 건너왔다. 여기까지해서 한 시간 훌쩍 넘어버렸다. 시간 다 잡아먹네 아이고.

 

 

 

건너편보다 훨씬 더 잘 정비된 분위기.

 

 

 

 

 

다리 건너면 바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자전거 끌고 올라오는 것도 힘들지만, 내려가는 것도 힘들다. 아침부터 진 다 빼고.

 

 

 

드디어 한강 자전거 길을 만났다. 아주 평평하게 잘 해놨다. 가끔 뉴스에서 한강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나오는 이유를 알겠더라. 이거 밤에 타면 꽤 위험하겠다. 밤이 아니라도 주말에 사람 많을 때 폭주족들이 멋 모르고 쌩쌩 달리면 사고 많이 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역시 비오는 날을 선택한 게 좋긴 좋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니까. 그렇게 사람이 별로 없는데도 왕복 자전거 길을 모두 차지하고는 둘이 나란히 달리는 사람들이라든가, 앞에 사람 있는지 잘 보지도 않고 쌩쌩 달리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넘어지는 자전거라든가 등등 이상한 사람들이 잔뜩. 정말 사람 많으면 엄청나겠다.

 

 

 

 

 

아아 바퀴에 바람이 없으니 평지에서 속력 안 나는 건 둘째 치고, 별 것 아닌 오르막길도 오르기가 힘들다. 웬만한 오르막길은 다 걸어서 올라가는 걸로. 근데 한강 자전거 길은 자전거 끌고 걸어서 가는 것도 위험하다. 워낙 앞도 안 보고 속력 내고 다니는 자전거들이 많아서. 아 거 참.

 

 

 

달리다가 비가 너무 많이 퍼부어서 한강 어느 전망대 천막 아래서 잠시 쉬었다. 쉬는 사람도 하나도 없고 비도 쉬 그치지 않을 것 같아서 벤치에 누웠더니, 따뜻한 바람이 솔솔 모기도 하나도 없다. 내 방보다 세 배는 좋은 환경. 이불만 가지고 와서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 그래서 잠시 잠 들기도 하고.

 

 

 

미사리 쯤엔 꽤 예쁜 길도 펼쳐졌다.

 

 

 

군데군데 쉴 수 있는 공간도 있었지만 비를 피할 곳은 별로 없어서 그냥 패스.

 

 

 

어느 다리 아래서 잠시 비를 피하며 쉬었다 간다. 근데 어딜 가도 아까 그 벤치의 따뜻한 바람이 불질 않는다. 여긴 차가운 바람이 불어.

 

 

 

평소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 하는 곳인 것 같던데 이렇게 아예 문을 열지도 않았다. 달리다보니 이런 곳들이 계속 나왔는데, 이런 노점은 문 연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조용하고 좋네 뭐.

 

근데 이쯤 와서 보니 핸드폰이 없다! 이런, 아무래도 아까 자면서 잠시 본다고 꺼냈던 걸 그냥 놓고 왔나보다. 젝일! 그거 잃어버리면 이젠 정말 핸드폰 없이 살아야 한다. 살 돈이 없으니까. 그럼 본인인증도 못 하게 되고, 공과금도 못 내고, 이체도 못 하고, 사회생활 지장도 생기고, 신용불량자 되고, 한 석 달 뒤에 여길 다시 찾아오겠지, 이번엔 죽으러. 이런 생각을 하며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이번엔 경치 감상이고 뭐고 없이 있는 힘껏 페달만 죽을 힘을 다 해 밟는다. 아아 젝일.

 

다시 돌아가보니 그 벤치 위에 핸드폰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아 다행이다. 아무래도 비가 와서 사람들이 많이 안 지나다니다보니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대로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래, 역시 산책과 여행은 비 올 때 해야 하는 거야.

 

 

 

 

 

사실 핸드폰을 놓고 올 정도로 제정신도 아니고 컨디션도 별로 안 좋았다. 그냥 피곤하고 재미없고 뭐 그런 거. 그나마 생각보다 예쁜 경치가 펼쳐져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에 어찌어찌 가긴 했지만. 팔당대교 쯤에선 뭔가 지도와는 좀 다른 구조로 길을 찾아가야 하는 곳이 나와서 헷갈리기도 했고.

 

 

 

백로인지 뭣인지 새들이 모여 있어서 찍었는데 제대로 안 나오네.

 

 

 

 

 

 

 

 

 

이 길은 자전거도 못 들어가고 오직 보행 전용 길이라고 딱 써 붙여 놨더라. 길이 꽤 이뻐 보였는데 아쉽게도 못 들어가봤다. 팔당대교 가기 전 어디 쯤인데, 이 주변이 아기자기 이쁘게 돼 있고 걷기도 좋게 돼 있어서, 비가 오는데도 주민들이 산책하러 꽤 많이 나와 있더라. 아까 핸드폰 찾으러 가면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나왔다가 하면서 본 여떤 여자는 꽤 긴 거리를 머리 풀어헤치고 우산도 없이 비 맞아가며 걷던데. 집엔 잘 들어갔을라나 몰라. 뭐 누구나 사연은 있는 게지. 이렇게 비 오는 날 자전거 타는 나도 여행은 가고싶은데 돈이 없다는 사연이 있으니까.

 

팔당대교까지를 '한강 자전거 길'이라고 하니까 거의 길의 끝까지 온 셈이다. 거기서부터는 북한강과 남한강 자전거길이 다시 펼쳐지고.

 

사진의 압박으로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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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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