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후라노 캠프장에 5일 쯤 묵었던 어느날이었다. 이제 슬슬 떠나야겠다고 마음 먹고 아침 일찍 텐트를 걷고 짐을 꾸려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이제 자주 다녀서 익숙한 시골길 지름길을 잘 헤쳐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전거 바퀴가 푹 꺼지는 거다. 펑크였다.

 

집도 하나 없은 허허벌판, 마침 축사 하나가 있어서 그늘에 앉아 펑크를 떼운다고 있으니 소나기까지 내려서 소 구경하며 한참 시간을 보냈다. 그리곤 출발했는데 얼마 못 가서 또 튜브에 바람이 빠졌다. 세 번을 이렇게 펑크 패치를 했지만 계속 그랬다. 사실 중고 자전거를 사오다보니 이미 타이어가 다 낡아서 찢어진 곳도 있었다. 튜브는 자전거를 구입한 곳에서 교체를 해준 거였지만, 워낙 싸고 안 좋은거다 보니 운 나쁘면 패치가 아예 안 되더라.

 

어쩔 수 없이 다시 마을로 끌고가 자전거 가게에 가서 튜브를 교체했다. 할아버지와 아들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였는데, 가만 보니 자전거방은 부업이고 메론 농사가 주업인 집이었다. 마침 점심때 쯤이어서 다들 쉬러 들어와 있어서 튜브를 금방 교체할 수 있었는데, 역시 좋은 튜브가 다르더라. 튜브 하나 교체했을 뿐인데 힘을 덜 들이고도 쭉쭉 나갈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튜브 하나 통째로 교체하는 데 1300엔이었나 1500엔이었나 들었다. 요금에 텍스까지 계산해서 꼼꼼히 적어서 영수증까지 떼 주더라. 그러면서 잠깐 있으라하곤 어딘가 들어가더니 메론 한 조각을 꺼내왔다. 아아 길 가에 보일 때마다 눈이 갔지만 비싸서 도저히 엄두를 못 내던 그 홋카이도 메론. 어쨌든 맛을 보긴 했다. 메론은 메론맛. 당연하지 아무리 비싸도 짜장면은 짜장면 맛인 것 처럼.

 

가미후라노 마쯔리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6

 

메론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할배가 이러신다. "에? 오늘 가려고? 모레 마쯔리 하는데". 엥? 마쯔리! 이틀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게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계획대로 그날 출발해서 간다해도 기껏해야 바다 밖에 더 보겠나. 그까짓 바다, 인천 가도 볼 수 있고. 마쯔리는 여기서 밖에 못 보잖아. 그래서 다시 눌러 앉아서 결국 마쯔리까지 봤다는 이야기. 이렇게해서 근 일주일을 이 캠프장에서 장기투숙 했다. 그러다보니 볼 거 못볼 거 다 보고.

 

어쨌든 일주일간 캠프 치고 여기저기 놀러 다닌 이야기는 앞편까지 다 했고, 이제는 마쯔리 이야기. 가미후라노 동네 마쯔리.

 

가미후라노 마쯔리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6

 

가미후라노 마쯔리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6

 

가미후라노 마쯔리는 관광지로 유명한 히노데 공원에서 열렸다. 마쯔리가 열린 날이 일요일이었는데, 평소엔 별로 보이지 않던 마을 주민들이 꽤 많이 나왔더라. 축제를 한다해도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언덕 너머 바로 뒷편에 있는 캠프장에서도 정보가 없으면 마쯔리를 하는지 안 하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가미후라노 마쯔리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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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한 켠에 세워진 행사 관련 부스도 열 개 남짓 됐는데, 애들 장난감 파는 가게와 각종 주전부리, 그리고 삿뽀로 생맥주 파는 곳 정도가 설치돼 있었다. 아무래도 축제장이라서 음식들이 좀 비싼 감이 있어서 난 그냥 편의점에서 사 왔다. 마쯔리 열릴 때 쯤 되니까 동네 편의점 앞에도 노점이 몇 개 들어서더라.

 

가미후라노 마쯔리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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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쯔리 하나를 보기 위해 기다렸으므로 하루종일 캠프장과 공원을 오가며 마쯔리를 봤다. '쿠라랏한' 이라는 나름 아이돌 그룹도 나오던데, 처음엔 동네 애들이 모여서 장기자랑 하는 건 줄 알았다. 다들 너무 어려서. 근데 알고보니 홋카이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진짜 아이돌이더라. 일본 쪽은 일반인 처럼 보이는 친근한 모습의 아이돌을 좋아한다더니 정말 친근한 모습이었다 (여러모로). 근데 이 공원이 평소에도 그렇지만 이날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어서 공연하는 사람들 머리가 다 뒤집어지고 난리 난 게 좀 안타까웠다. 라지만, 제일 안타까운 건 이런 거 보다가 배고파지면 밥 사먹으러 몇 킬로미터 떨어진 편의점을 가는 나 자신. 

 

가미후라노 마쯔리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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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런저런 공연이 계속됐는데 별 관심 안 가는 건 그냥 건너뛰고 공원을 한 바퀴 돌거나 캠프장에 돌아가서 잠시 드러누워 있거나 했다. 마쯔리 하는 곳과 캠프장이 가까워서 오락가락 하기 쉬우니 정말 좋더라.

 

무대에서 공연은 하지만 이 공연 소리도 축제장 밖으로는 거의 새 나가지 않을 정도로 음향을 조절해놨더라. 이런 조용한 분위기라는 것만 제외하면 거의 한국 시골 동네 축제와 비슷한 분위기. 기모노 입은 거장 같은 분위기의 할매가 나와서 엔카를 부를 때는 노인네나 술 좀 먹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 추는 것 까지 비슷했다. 다만 주변 사람들이 불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나하게 술판 펴 놓고 왁작지껄 떠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도 좀 다른 점이었고. 아, 삼겹살 구워 먹는 사람도 없더라. 그러고보니 다른 점이 좀 많네.

 

가미후라노 마쯔리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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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타는 주로 중학생 이하 아이들만 입고 다니던데, 현대식으로 개량한 것도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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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끝나고 나니까 무대 옆쪽에 내려와서 사람들하고 손도 잡아주고 수다도 떨고 사인도 해 주던 아이돌 그룹. 사인 받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냥 가서 대화 몇 마디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 한국이었으면 다음 행사 뛰어야 하므로 차 타고 쓩 가버렸을 텐데.

 

가미후라노 마쯔리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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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파는 부스엔 막 포켓몬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신기한 물건들이 많던데, 꼬맹이들만 버글버글해서 오래 서서 보다간 오타쿠 취급 받을까봐 슬쩍 둘러보고 자리를 떠야만 했다. 그런 시선 별로 의식하지 않는 편이지만, 정말 의식할 수 밖에 없을 만큼 꼬맹이들이 버글거렸다.

 

가미후라노 마쯔리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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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전경보다는 뒤에 집들을 한 번 보라. 그래도 이쪽은 좀 평범한 축에 속하는데, 집들이 뭔가 별장 같은 생김새이지 않은가. 후라노, 비에이 이 일대는 나름 부촌이더라.

 

가미후라노 마쯔리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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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도 햇볕 뜨거울 때는 잠시 집에 갔다가 저녁에 또 나오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한낮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편. 저녁 때 쯤엔 한 2천 명 정도 모인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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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하고 비슷한 점 하나. 무대 앞쪽은 항상 공연을 봐야겠다는 열성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공연을 꼼꼼히 보는데, 동네 축제에선 그들이 주로 꼬마들이나 노인들이라는 것. 조금 뒷쪽으로 가면 술상이나 음식들 펴 놓고 노래를 배경음악 삼아 자기들끼리 노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 아줌마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들을 부르던데, 누군지 모르겠다. 축제 포스터에 다른 출연자보다 크게 사진이 나와있는 걸로 봐선 좀 더 유명한 사람인 것 같던데.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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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출연자들이 시간 간격을 좀 두고 두 번씩 공연을 했다. 그래서 공연을 꼼꼼히 볼 수 있었는데, 오후가 돼서 똑같은 공연 다시 보고 있으려니 슬슬 재미가 없어지더라. 그래도 애들 귀엽잖아.

 

 

가미후라노 마쯔리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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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산에 걸려있는 구름이 밤이 되면 몰려와서 거의 항상 비를 뿌린다. 낮 시간엔 저기 딱 걸려 있는 게 신기하더라.

 

중간중간 쉬려고 캠프장엘 갔는데, 캠프장에 있던 중국인들은 대체로 축제장을 가지 않더라. 사실 캠핑장엔 중국인들도 꽤 많이 있었다. 근데 일주일 정도 있으면서 봤는데, 여기가 시골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이게 전체적인 분위기인지 몰라도, 중국인들을 하대하는 일본인들이 좀 있더라. 예를 들면 중국인이 작은 실수를 하면 그 사람 몸을 툭툭 치면서 뭐라 하는 일본인들도 있었고, 별 것 아닌데도 그냥 지나가는 중국인에게 뭐라뭐라 하는 일본인들도 있었고. 뭐 그래도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아서 일부 사람들의 소행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건 일본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 좀 놀라웠다. 아무래도 그래서 중국인들은 일본인들과 섞이기 싫어했고, 그래서 마쯔리가 열린다는 걸 알면서도 축제장엔 안 가는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한 중국인에게 마쯔리 안 가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웃으면서 아무 말 안 하던데. 뭔가가 개판이 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여기만 그랬던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많이 씁쓸했다. 여기서 캠핑하던 중국인들은 바베큐 구워 먹을 때 말고는 그리 시끄럽지도 않았는데.  

 

가미후라노 마쯔리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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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니까 여러가지 커다란 등이 나왔는데, 처음엔 한쪽에 줄 지어 서서 뭔가 준비한다고 시간을 많이 보내길래 무슨 등불 싸움 같은 거라도 할 줄 알았다. 근데 그냥 불 켜진 등 끌고 운동장 한 바퀴 도는 걸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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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운동장을 한 바퀴 다 돌고 퇴장하니 이제 완전히 해가 졌다. 축제 마지막 순서는 불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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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탄 같이 터진 불꽃놀이. 불꽃놀이 자체는 크게 재미가 없었다. 폭죽 하나하나를 무척 소중하게 시간 간격을 두고 터뜨리기 때문에 화려하다거나 웅장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하나씩 하나씩 터지는 볼꽃을 마치 미술관에서 작품 감상하듯 보는 형태여서 좀 늘어지는 느낌도 있었고.

 

근데 이게 기껏해야 한 이백 미터 정도 떨어진 언덕 꼭대기에서 쏴 올리는 거라서, 폭죽 떠지고 나서 생긴 재 같은 게 막 날아오기도 하고, 아직 타고 있는 불똥이 막 바람에 날려서 관객들 사이로 휘날리기도 하고 해서 현장감 하나는 엄청났다.

 

가미후라노 마쯔리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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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을 하나하나 소중히 터뜨리다보니 불꽃놀이 행사는 한 시간 정도 계속됐다. 한국이었으면 그냥 한꺼번에 빠바방 쏘아 올려서 화려하게 터뜨리고 한 십 분 만에 끝냈을 텐데. 그러다보니 불꽃놀이를 즐기는 방법도 약간 달랐다. 한국이면 불꽃이 빵빵 터지면 그것만 계속 쳐다보는데, 여긴 사람들끼리 얘기하고 술 먹고 노닥거리다가 불꽃 하나 터지면 잠시 보는 형태.

 

어쨌든 마지막 불꽃이 터지고 축제가 모두 끝났다. 사실 그리 인상적인 뭔가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시골 동네 마쯔리를 한 번 구경해봤으니 그것만으로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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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