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후라노에서 새벽부터 출발해서 비에이 패치워크 로드를 구경하고 삿포로를 향해 달렸다. 패치워크 로드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돌아다닌 걸 제외하고, 단순히 국도를 달린 거리만 대충 계산해봐도 이날은 100킬로미터 넘게 달렸다. 패치워크 로드에서 노느라고 잠깐잠깐 쉰 것 말고는 거의 쉬지도 않았다.

 

자전거 튜브가 한국 것은 검은색 고무로 좀 너덜너덜하게 돼 있어서 이거 정말 펑크나기 쉽겠다 싶은데, 일본 것은 정말 깨끗하게 돼 있더라. 하얀색 고무에 빨간 색이었나 불룩 솟은 줄무늬가 쭉쭉 가 있어서 눈으로 봐도 잘 찢어지지 않겠다 싶게 생겼다. 그리고 튜브를 바꾸니까 웬지 자전거가 더 잘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한국 튜브를 넣고 탈 때는 뭉클뭉클한 느낌이었다면, 일본 튜브를 넣으니 탱글탱글 한 느낌이었달까. 물론 그냥 느낌이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비에이에서 삿포로 가는 길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8

 

비에이를 벗어나면서도 탐나는 집들은 많더라. 아아 저런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인 걸까 싶어서 부러운 집들도 많고. 물론 겨울이면 엄청난 눈에 뒤덮혀 살기는 하겠지만, 눈도 별로 안 오는데 얼어 죽을 것만 같은 곳에서 사는 것보단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르고.

 

 

여행하다보면 딱히 정리가 안 돼서 빼버리는 에피소드도 많다. 예를 들면 이 날도 패치워크 로드 다 구경하고 나왔는데도 이른 아침이어서 이제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어느 농가 겸 가게 앞 벤치에서 잠시 앉아 쉬고 있는데 한 소녀가 아라라랏챠! 하며 씩씩하게 셔터 문을 올리다가 딱 눈이 마주쳤다. 풀메이크업에 씩씩한 모습이 아침햇살에 눈부시게 빛났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 나눴는데 자기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그냥 집에서 농사짓고 메론 팔고 하는 거 거들고 있다며, 자기는 게을러서 도시로 나가면 못 살 거라고 베시시 웃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던 그런 것들. 말로 해봤자 별로 떠오르지도 않겠지, 내 머리 속엔 아주 생생히 각인 돼 있는데.

 

비에이에서 삿포로 가는 길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8

 

비에이를 벗어나니 슬슬 아파트도 나오고 점점 도시 형태의 마을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비에이 쪽만 땅을 조금도 놀리지 않고 농작물 심는 데 활용하는 듯 했다. 다른 쪽은 변두리 구석구석 혹은 강 가 같은 곳에 공터가 있어서, 여차하면 그냥 밤에 대충 하룻밤 지내고 갈만 한 곳들이 꽤 보였다.

 

비에이에서 삿포로로 통하는 길, 정확히는 아사히카와라는 곳에서 삿포로로 통하는 길에는 꽤 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보였다. 이날 하루만 다섯 명 정도의 자전거 여행자들을 봤는데, 아무래도 국적은 모두 일본인 같았다. 다들 자전거 앞뒤로 비싸보이는 패니어 가방 달고, '나 장기 자전거 여행자요' 하는 포스로 중무장 해 다니더라. 어떤 애는 자전거 옆에 통기타를 달고 다니기도 했는데, 정말 무슨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중무장이었다. 좀 있어 보이긴 하던데 페달 젓느라 헥헥거리는 걸 보면 그리 부럽진 않고.

 

어쨌든 캠프장이나 길거리, 편의점 앞 등에서 몇몇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눴는데, 대체로 일본인 여행자들은 일본 여행 다닐 때 동네 공원 같은 데서 별다른 허락 같은 걸 안 받는다더라. 한국 여행자들 여행기를 보면 동네 공원에서 하룻밤 묵기 위해 책임자를 찾아 다니고 허락을 받고 한국인임을 알리고 막 그러던데, 일본인에게 그래야하냐고 물으니 대뜸 나오는 대답이 '왜?'. 아니 내가 물었는데 니가 왜라고 또 물으면 어쩌라고.

 

결론을 말 하면 분위기를 잘 봐야 한다는 거다. 동네 분위기 잘 봐서, 허락 안 받으면 쫓겨날 수도 있겠구나 싶으면 허락을 구하고, 그냥 그런 것 없어도 되겠다 싶으면 아무도 안 보는 하룻밤 정도는 대충 자고 가도 된다고. 그런데 도심의 공원은 위험할 수 있으니 웬만하면 피하는 게 좋다는 팁.

 

비에이에서 삿포로 가는 길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8

 

 

자전거 여행을 끝까지 완주하며 즐기려면 가난과 의지력이 필요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난에서 나오는 의지력이랄까. 혹은 가난해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의지력이랄까.

 

예전에 제주도에 정식 자전거 일주 코스가 생기기 전에 자전거 여행을 두어 번 한 적이 있다. 그 때마다 본 광경이 있는데, 건장한 남자들도 중간에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러니까 체력보다는 지구력과 의지력인데, 그 의지력은 가난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 가다가 힘든 고비에서, '에이,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돈 있는데 호텔에 묵고 랜트카 하자' 이래버리면 그걸로 자전거 여행은 끝나는 거다.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그걸 실행에 옮길 돈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계속 탈 수 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싶을 때, 돌아가는 거나 계속 가는 거나 비슷한 거리라면 앞으로 계속 전진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일본은 여기서 자전거를 버린다해도 택시를 타면 일단 그 돈이 엄청나고, 또 버리고 도시로 간다해도 그 숙박비는 어쩔거며, 그때 놀러다니며 쓸 돈은 또 어쩔 텐가. 그런 옵션을 선택할 수 있을만 한 재력이 있으면 포기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밖에 없다. 꼭 그렇게 여행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여름철 그 사람 많은 곳에 놀러가는 짓은 꼭 해야 하냐고 되물어 볼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그렇게 힘든 삶은 왜 계속 지속해야 하느냐고 질문해볼 수도 있고. 혹시 아냐, 힘들게 자전거 타다가 득도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비에이에서 삿포로 가는 길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8

 

어쨌든 비에이를 약간 벗어나도 아직 예쁜 시골 풍경은 펼쳐지더라. 오히려 '비바이'였나, 그 쯤 가니까 완전 평지에 들판이 쭉 펼쳐져서 또 다른 맛이 나기도 하더라. 삿포로에서 비에이로 한 바퀴 빙 도는 길 전체가 드라이브 코스라 봐도 되겠다.

 

 

 

비에이에서 삿포로 가는 길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8

 

큰 마을 근처에 들어서면 차량이 줄지어 가기도 한다. 그래도 대체로 갓길이 잘 돼 있어서 자전거 타기에 별 무리가 없다. 규모가 좀 되는 마을들엔 어김없이 '미치노에키'가 있다. 길가의 역 혹은 로드 스테이션(road station)이라고도 하는데, 단순히 말하면 휴게소 개념이다. 그런데 그 지역 특산품을 팔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선 그 지역의 관광지를 알리는 소품이나 안내소가 설치돼 있기도 하다.

사실 도보 여행자나 자전거 여행자들이 이 미치노에키를 밤에 숙박지로 사용하기도 한다. 대체로 밤에도 화장실은 열어 놓으니까 여행자들이 모여들어 하룻밤 노숙을 하거나, 열려진 건물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자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근데 난 몇 번 경험해보고는 이건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어서 웬만하면 숙박지로 이용하지 않는다. 단순히 길 가다가 잠시 쉬어가는 용도로 이용할 뿐. 개인 취향일 수도 있기 때문에 길게는 말 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라. 내가 나쁜 마음을 먹고 돈이 필요하면 가장 쉬운게 뭘까. 여행자는 돈이 있고 밤에 그런 애들이 저기에 많이 모이지. 그 정보는 누구나 알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고.

 

비에이에서 삿포로 가는 길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8

 

비에이에서 삿포로 가는 길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8

 

비에이에서 삿포로 가는 길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8

 

어디인지 지명은 정확히 모르겠는데, 완전 평지로 쫙 펼쳐진 이 길에서 정말 죽을 뻔 했다. 엄청난 맞바람 때문에.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하고 균형만 잘 잡고 가만히 있으니 자전거가 뒤로 밀렸다. 이 맞바람을 뚫고 페달을 밟자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차라리 걷는 게 나을까 싶어 걸어봤는데, 똑같았다. 맞바람으로 걷기도 힘든 상황. 이게 해질녘 쯤 되면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딱 걸려서 그렇게 된 것 같다. 홋카이도 내륙 쪽은 꼭 일몰 전후로 거쎈 바람이 불더라. 그리고 그 후엔 거의 항상 비가 오고. 이런 기후 특색이 있다는 것도 하나 배운 거겠지, 살면서 언제 또 써먹을지 알 수는 없지만.

 

비에이에서 삿포로 가는 길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8

 

맞바람을 기록할 수 없어 아쉽다. 바람만 없었다면 그냥 쌩하니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길이었는데.

 

 

시골 구석엔 군데군데 이렇게 급하면 묵어갈 공터가 있다는 예시. 갑자기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 강물에 휩쓸려가도 책임은 못 짐.

 

비에이에서 삿포로 가는 길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8

 

 

최대한 삿포로 근처까지 갔다. 삿포로 근처 국도는 가로등이 꽤 있어서 약간 무리를 했다면 그날 밤에 삿포로 시내로 진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밤에 도시로 가봤자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숙소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적당한 곳에서 끊고 대충 하룻밤을 지냈다.

 

원래는 지도책을 보고 적당한 캠핑장을 찾아가봤는데, 두 군데 모두 폐장이었다. 아예 영업을 안 하더라. 여름 성수기에도 영업을 안 한다면 아예 장사를 접었다고 봐도 될 테다. 네비에도 나오는지 차 끌고 캠프장 찾아왔다가 돌려서 나가는 사람들도 몇몇 있더라. 밤 늦게 폐장한 캠프장 앞에서 당황하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미리미리 캠프장을 찾아놔야 한다. 하지만 또 굳이 그런 것에 스트레스 받을 정도로 신경 곤두서서 다닐 필요까지는 없다. 공원은 많으니까.

 

어느 넓은 공원 한구석, 사람이 안 올 것 같고 곰도 안 올 것 같은 적당한 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런데 여기는 또 문제가 있더라. 새벽까지 남녀 청소년들이 공원에 모여서 시끄럽게 오토바이 타고 꺅꺅 소리지르며 다니는 걸 듣고 있어야 했으니까. 소음 같은 건 문제가 아닌데 쟤네가 나를 발견하고 접근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아무 일 없이 다들 흩어지고 나도 잠을 잘 수 있었지만. 이런 건 그때그때 어떤 곳이냐에 따라 다 다른 거니까 어떻게 분위기 같은 걸 보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좀 더 내공을 쌓을 수 밖에. 그래도 좀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아서 야경이 좋았는데 이놈의 카메라, 다 흔들려서 쓸 수가 없다.

 

비에이에서 삿포로 가는 길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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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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