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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이에서 삿포로 가는 길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8해외여행/홋카이도 자전거여행 2016. 7. 11. 18:21
가미후라노에서 새벽부터 출발해서 비에이 패치워크 로드를 구경하고 삿포로를 향해 달렸다. 패치워크 로드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돌아다닌 걸 제외하고, 단순히 국도를 달린 거리만 대충 계산해봐도 이날은 100킬로미터 넘게 달렸다. 패치워크 로드에서 노느라고 잠깐잠깐 쉰 것 말고는 거의 쉬지도 않았다.
자전거 튜브가 한국 것은 검은색 고무로 좀 너덜너덜하게 돼 있어서 이거 정말 펑크나기 쉽겠다 싶은데, 일본 것은 정말 깨끗하게 돼 있더라. 하얀색 고무에 빨간 색이었나 불룩 솟은 줄무늬가 쭉쭉 가 있어서 눈으로 봐도 잘 찢어지지 않겠다 싶게 생겼다. 그리고 튜브를 바꾸니까 웬지 자전거가 더 잘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한국 튜브를 넣고 탈 때는 뭉클뭉클한 느낌이었다면, 일본 튜브를 넣으니 탱글탱글 한 느낌이었달까. 물론 그냥 느낌이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비에이를 벗어나면서도 탐나는 집들은 많더라. 아아 저런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인 걸까 싶어서 부러운 집들도 많고. 물론 겨울이면 엄청난 눈에 뒤덮혀 살기는 하겠지만, 눈도 별로 안 오는데 얼어 죽을 것만 같은 곳에서 사는 것보단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르고.
여행하다보면 딱히 정리가 안 돼서 빼버리는 에피소드도 많다. 예를 들면 이 날도 패치워크 로드 다 구경하고 나왔는데도 이른 아침이어서 이제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어느 농가 겸 가게 앞 벤치에서 잠시 앉아 쉬고 있는데 한 소녀가 아라라랏챠! 하며 씩씩하게 셔터 문을 올리다가 딱 눈이 마주쳤다. 풀메이크업에 씩씩한 모습이 아침햇살에 눈부시게 빛났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 나눴는데 자기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그냥 집에서 농사짓고 메론 팔고 하는 거 거들고 있다며, 자기는 게을러서 도시로 나가면 못 살 거라고 베시시 웃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던 그런 것들. 말로 해봤자 별로 떠오르지도 않겠지, 내 머리 속엔 아주 생생히 각인 돼 있는데.
비에이를 벗어나니 슬슬 아파트도 나오고 점점 도시 형태의 마을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비에이 쪽만 땅을 조금도 놀리지 않고 농작물 심는 데 활용하는 듯 했다. 다른 쪽은 변두리 구석구석 혹은 강 가 같은 곳에 공터가 있어서, 여차하면 그냥 밤에 대충 하룻밤 지내고 갈만 한 곳들이 꽤 보였다.
비에이에서 삿포로로 통하는 길, 정확히는 아사히카와라는 곳에서 삿포로로 통하는 길에는 꽤 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보였다. 이날 하루만 다섯 명 정도의 자전거 여행자들을 봤는데, 아무래도 국적은 모두 일본인 같았다. 다들 자전거 앞뒤로 비싸보이는 패니어 가방 달고, '나 장기 자전거 여행자요' 하는 포스로 중무장 해 다니더라. 어떤 애는 자전거 옆에 통기타를 달고 다니기도 했는데, 정말 무슨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중무장이었다. 좀 있어 보이긴 하던데 페달 젓느라 헥헥거리는 걸 보면 그리 부럽진 않고.
어쨌든 캠프장이나 길거리, 편의점 앞 등에서 몇몇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눴는데, 대체로 일본인 여행자들은 일본 여행 다닐 때 동네 공원 같은 데서 별다른 허락 같은 걸 안 받는다더라. 한국 여행자들 여행기를 보면 동네 공원에서 하룻밤 묵기 위해 책임자를 찾아 다니고 허락을 받고 한국인임을 알리고 막 그러던데, 일본인에게 그래야하냐고 물으니 대뜸 나오는 대답이 '왜?'. 아니 내가 물었는데 니가 왜라고 또 물으면 어쩌라고.
결론을 말 하면 분위기를 잘 봐야 한다는 거다. 동네 분위기 잘 봐서, 허락 안 받으면 쫓겨날 수도 있겠구나 싶으면 허락을 구하고, 그냥 그런 것 없어도 되겠다 싶으면 아무도 안 보는 하룻밤 정도는 대충 자고 가도 된다고. 그런데 도심의 공원은 위험할 수 있으니 웬만하면 피하는 게 좋다는 팁.
자전거 여행을 끝까지 완주하며 즐기려면 가난과 의지력이 필요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난에서 나오는 의지력이랄까. 혹은 가난해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의지력이랄까.
예전에 제주도에 정식 자전거 일주 코스가 생기기 전에 자전거 여행을 두어 번 한 적이 있다. 그 때마다 본 광경이 있는데, 건장한 남자들도 중간에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러니까 체력보다는 지구력과 의지력인데, 그 의지력은 가난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 가다가 힘든 고비에서, '에이,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돈 있는데 호텔에 묵고 랜트카 하자' 이래버리면 그걸로 자전거 여행은 끝나는 거다.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그걸 실행에 옮길 돈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계속 탈 수 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싶을 때, 돌아가는 거나 계속 가는 거나 비슷한 거리라면 앞으로 계속 전진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일본은 여기서 자전거를 버린다해도 택시를 타면 일단 그 돈이 엄청나고, 또 버리고 도시로 간다해도 그 숙박비는 어쩔거며, 그때 놀러다니며 쓸 돈은 또 어쩔 텐가. 그런 옵션을 선택할 수 있을만 한 재력이 있으면 포기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밖에 없다. 꼭 그렇게 여행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여름철 그 사람 많은 곳에 놀러가는 짓은 꼭 해야 하냐고 되물어 볼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그렇게 힘든 삶은 왜 계속 지속해야 하느냐고 질문해볼 수도 있고. 혹시 아냐, 힘들게 자전거 타다가 득도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어쨌든 비에이를 약간 벗어나도 아직 예쁜 시골 풍경은 펼쳐지더라. 오히려 '비바이'였나, 그 쯤 가니까 완전 평지에 들판이 쭉 펼쳐져서 또 다른 맛이 나기도 하더라. 삿포로에서 비에이로 한 바퀴 빙 도는 길 전체가 드라이브 코스라 봐도 되겠다.
큰 마을 근처에 들어서면 차량이 줄지어 가기도 한다. 그래도 대체로 갓길이 잘 돼 있어서 자전거 타기에 별 무리가 없다. 규모가 좀 되는 마을들엔 어김없이 '미치노에키'가 있다. 길가의 역 혹은 로드 스테이션(road station)이라고도 하는데, 단순히 말하면 휴게소 개념이다. 그런데 그 지역 특산품을 팔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선 그 지역의 관광지를 알리는 소품이나 안내소가 설치돼 있기도 하다.
사실 도보 여행자나 자전거 여행자들이 이 미치노에키를 밤에 숙박지로 사용하기도 한다. 대체로 밤에도 화장실은 열어 놓으니까 여행자들이 모여들어 하룻밤 노숙을 하거나, 열려진 건물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자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근데 난 몇 번 경험해보고는 이건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어서 웬만하면 숙박지로 이용하지 않는다. 단순히 길 가다가 잠시 쉬어가는 용도로 이용할 뿐. 개인 취향일 수도 있기 때문에 길게는 말 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라. 내가 나쁜 마음을 먹고 돈이 필요하면 가장 쉬운게 뭘까. 여행자는 돈이 있고 밤에 그런 애들이 저기에 많이 모이지. 그 정보는 누구나 알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고.
어디인지 지명은 정확히 모르겠는데, 완전 평지로 쫙 펼쳐진 이 길에서 정말 죽을 뻔 했다. 엄청난 맞바람 때문에.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하고 균형만 잘 잡고 가만히 있으니 자전거가 뒤로 밀렸다. 이 맞바람을 뚫고 페달을 밟자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차라리 걷는 게 나을까 싶어 걸어봤는데, 똑같았다. 맞바람으로 걷기도 힘든 상황. 이게 해질녘 쯤 되면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딱 걸려서 그렇게 된 것 같다. 홋카이도 내륙 쪽은 꼭 일몰 전후로 거쎈 바람이 불더라. 그리고 그 후엔 거의 항상 비가 오고. 이런 기후 특색이 있다는 것도 하나 배운 거겠지, 살면서 언제 또 써먹을지 알 수는 없지만.
맞바람을 기록할 수 없어 아쉽다. 바람만 없었다면 그냥 쌩하니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길이었는데.
시골 구석엔 군데군데 이렇게 급하면 묵어갈 공터가 있다는 예시. 갑자기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 강물에 휩쓸려가도 책임은 못 짐.
최대한 삿포로 근처까지 갔다. 삿포로 근처 국도는 가로등이 꽤 있어서 약간 무리를 했다면 그날 밤에 삿포로 시내로 진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밤에 도시로 가봤자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숙소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적당한 곳에서 끊고 대충 하룻밤을 지냈다.
원래는 지도책을 보고 적당한 캠핑장을 찾아가봤는데, 두 군데 모두 폐장이었다. 아예 영업을 안 하더라. 여름 성수기에도 영업을 안 한다면 아예 장사를 접었다고 봐도 될 테다. 네비에도 나오는지 차 끌고 캠프장 찾아왔다가 돌려서 나가는 사람들도 몇몇 있더라. 밤 늦게 폐장한 캠프장 앞에서 당황하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미리미리 캠프장을 찾아놔야 한다. 하지만 또 굳이 그런 것에 스트레스 받을 정도로 신경 곤두서서 다닐 필요까지는 없다. 공원은 많으니까.
어느 넓은 공원 한구석, 사람이 안 올 것 같고 곰도 안 올 것 같은 적당한 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런데 여기는 또 문제가 있더라. 새벽까지 남녀 청소년들이 공원에 모여서 시끄럽게 오토바이 타고 꺅꺅 소리지르며 다니는 걸 듣고 있어야 했으니까. 소음 같은 건 문제가 아닌데 쟤네가 나를 발견하고 접근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아무 일 없이 다들 흩어지고 나도 잠을 잘 수 있었지만. 이런 건 그때그때 어떤 곳이냐에 따라 다 다른 거니까 어떻게 분위기 같은 걸 보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좀 더 내공을 쌓을 수 밖에. 그래도 좀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아서 야경이 좋았는데 이놈의 카메라, 다 흔들려서 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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