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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간 여권도 없이 아메리카 대륙 1만 킬로미터를 이동한 사람 이야기해외소식 2017. 2. 11. 02:49
5년 전에 집에서 별다른 흔적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사람이, 5년 후에 1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다른 나라에서 발견됐다.
애초에 여행 가방 같은 것은 고사하고, 여권이나 돈도 없이 동네 마실 나가듯 나간 사람이 그 먼 거리를 이동했다는 것이 놀랍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루트 속에는 아마존 정글 구간이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무서운 동물들 가득한 오지 밀림 아마존 말이다. 밀림 깊숙한 곳에선 당연히 차도 안 다닐텐데 그 구간을 통과했다는 것은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서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안톤의 주장에 따르면 부에노스아이레스(2)까지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한다. 이걸 못 믿는다 하더라도, 그가 발견된 곳(3)만 해도 토론토에서 약 1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5년 후, 1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
캐나다 토론토에 살던 안톤 필리파(Anton Pilipa)는 2012년에 갑자기 사라졌다. 당시 정신질환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던 터라, 가족들은 경찰서나 노숙자 쉼터, 시체 안치소 등을 뒤졌다고 한다. 물론 사람을 찾는다는 전단지도 만들어서 온오프라인으로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끝내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6년 12월, 크리스마스 직전에 브라질 경찰국은 가족들에게 안톤이 살아있다고 알렸다. 브라질의 론도니아(Rondonia) 주 고속도로를 걷고 있던 안톤을 한 장교가 발견하고 경찰에 연락했고, 안톤은 일단 병원에 입원됐다. 그리고 현지 대사관의 도움으로 신원 확인을 해서 가족들에게 연락됐다.
하지만 가족들이 그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백방으로 알아보는 도중에, 브라질 포르토 벨로의 한 병원에 있던 그는 또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2017년 1월 경, 브라질 북부 지역의 마나우스(Manaus) 지역의 한 도로 위에서 경찰이 그를 발견했다. 발견할 당시에 경찰은 이 사람이 외국인 같은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병원으로 데려가고 신원조회를 했다 한다.
그래서 다시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았고, 마침내 가족들은 그를 집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지금은 캐나다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한다.
(안톤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가족들이 열었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이미지. 출처: 고펀드미)
돈도 여권도 없었던 안톤의 여정
그가 사라졌던 병원에서 다시 발견된 마나우스까지 거리만 해도 약 800킬로미터였다. 그리고 캐나다 토론토에서 마나우스까지 육로 거리만 해도 대략 1만 킬로미터 정도가 된다. 안톤이 주장하는 말들을 다 무시한다고 쳐도, 객관적 사실만 놓고 봐도 육로로 대략 1만 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한 셈이다. 참고로 1만 킬로미터면 대략 서울에서 이집트 카이로까지 육로로 이동할 정도의 거리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어느날 문득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 도서관'에 가고 싶었다 한다. 그래서 그냥, 도서관에 가는 것이므로, 가볍게 가방 하나 메고 집을 나섰다 한다.
물론 도서관에 가는 것이므로 별도의 여권이나 돈이나 여벌의 옷 같은 건 없었다. 아마 간식거리나 필기구 정도 넣었겠지. 하지만 문제는 그의 집은 캐나다 토론토. 가고 싶은 도서관은 아르헨티나. 1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다.
중간중간 히치하이크나 트럭 짐칸에 타기도 했는데, 대부분은 걸어서 이동했다 한다. 특히 아마존 밀림 구간은 너무 힘들어서 걷다가 발톱이 다 빠졌다고. 먹을 것은 주로 과일을 따 먹거나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구걸을 했다 하고, 옷은 가끔 사람들이 주거나, 혹은 줍거나 해서 입었다 한다. 처음 가지고 나온 소지품들은 길에서 만난 나쁜 사람들에게 다 빼앗겼다고.
안톤이 지나간 국가들만 대략 따져봐도, 캐나다, 미국, 멕시코, 과테말라,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이다. 아마도 미국은 캐나다에서 입국, 멕시코로 출국해서 여권 없이 육로로 걸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이 모든 나라들을 여권도 없이 통과했다는 것도 놀랍다.
하여튼 어찌어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갔다고 한다. 거기서 국립도서관도 잘 찾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신분증이 없으니 들어갈 수 없다며 입장을 거부했다고. 그래서 다시 신분증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한다.
브라질 경찰이 발견하지 못 했다면 어쩌면 몇 년 뒤에 캐나다로 다시 돌아갔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엄청나게 지쳐있던 몸으로 다시 아마존 통과에 성공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딱 위험한 순간에 운 좋게 발견됐다 할 수 있겠다. 물론 여행 중에 위험한 순간도 많았을 테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도서관 모습. 한 번 가보고 싶게 생기긴 했다. 이미지: 구글 스트리트 뷰)
그리고 현실
어쨌든 이렇게 다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 안톤은 이런 말을 남겼다. "삶은 단순하고, 많은 소유물이 필요 없다는 것을 여행 중에 깨달았다"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가 살아있다는 연락을 받고는 크라우드 펀딩을 했다. 그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데는 꽤 많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략 밝힌 금액만 해도, 항공료 1600달러, 병원비 및 영사 수수료 등 2000달러, 토론토에서 두어달 정도의 월세 3500달러 정도다. 다행히도 1만 달러 정도의 금액이 모여서 집으로 잘 데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하나 더 남아있다. 안톤은 2011년에 폭력 및 무기 범죄로 기소됐는데, 2012년 법정에 출두하기 전에 사라졌던 것이다. 타이밍이 좀 의심스럽다는 문제 제기가 있지만, 가족들은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정신 질환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그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고, 보석으로 일단 풀려난 상태라 한다.
사실 범죄 사실이 드러날까봐 도망을 쳤다면 캐나다나 혹은 미국 어디서 그냥 살면 되지, 굳이 아마존 정글을 지나서 남미까지 가지는 않았을 듯 싶다. 어쨌든 참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참 놀라운 여정이기도 하다. 아울러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도서관은 참 매정하구나 싶기도 하고.
어쨌든 나도 북한만 아니면 이런 여행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정말 안타깝다. 텐진까지만 배 타고 가서 거기서 걸어서 이집트까지 한 번 가볼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 각종 험난한 현실, 특히 돈 문제가 딱 걸리는 걸 보면, 역시나 가장 행복한 건 여행 중에 사라지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앞뒤 따지지 말고 떠나고 싶으면 떠나는 게 정답일 것 같기는 하다.
p.s. 참고자료
* Toronto man, missing for 5 years, found wandering on Brazilian highway (CBC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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