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SeMA) 서소문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하이라이트' 전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여기서 까르띠에(Cartier)는 일상에서 시계나 향수, 액세서리 같은 걸로 흔히 접할 수 있는(하지만 구입은 어려운), 바로 그 프랑스 명품 쥬얼리 브랜드다. 이 까르띠에에서 1984년에 현대미술재단을 설립했고, 그 재단 소장품 일부를 가져와서 지금 세마(SeMA)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차라리 까르띠에 현대미술전이라고 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에 찾아올 텐데 싶기도 하지만, 그냥 주요 소장품을 전시했다하여 '하이라이트'라고 제목을 정한 시크함이 멋지다. 비꼬는 거 아니고 진짜다, 어차피 낚여서 와봤자 재미없네하고 갈 바에야 관심 있는 사람들만 끌어들이는 것이 나을 테니까.

 

어쨌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런 의미있고 큰 전시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이라이트 전은 8월 15일까지 열리고, 무료다. 현대미술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유명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니까. 물론 명품 쥬얼리 같은 건 없으니 브랜드에 이끌려 가지는 말기 바란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미술관 안에 딱 들어서면 먼저 장 미셀 알베롤라의 '빛의 군상' 작품이 보인다. 예술가들의 커뮤니티를 그렸다는 이 작품은 빨간 바탕에 검은색으로 그려진 벽화로,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품이기도 하고, 붉은색이 인상적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증샷이나 셀카 배경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 위로는 사라 지의 '솟아 오르는 것은 모두 덮어야 한다'라는 작품이 있다. 보기에 따라 뭔가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기본은 모빌이다. 이 미술관에 맞게 재작해서 넣은 것이라 한다. 전시관을 옮겨다닐 때마다 이 작품이 보여서, 정말 솟아 오르는 것이 모두를 덮고 있구나 싶기도 하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물론 이런저런 설명을 해봤자 별로 이해는 안 된다. 그래서(?) 친절하게 로비에 떡하니, 붉은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큼지막하게 이런 문구를 써놨다. "우주는 계속해서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우주는 현대미술이라는 우주라고 해석해볼 수 있겠다. 뭐 어차피 아무리 노력해봐야 작가들의 세계를 내가 어떻게 이해하겠냐라는 좋은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 우주는 기본적으로 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즉, 평생을 같이 살아온 가족이라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 그냥 받아들이거나 내치는 수 밖에 없다. 작품도 마찬가지. 나와 감정(삘 혹은 케미 등)이 맞으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생각해보자. 바쁘고 귀찮은데 뭔 설명 듣고 이해까지 해야하냐. 됐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바로 앞에 있는 전시장 입구로 들어가면 이불의 '천지'가 나온다. 현 세대 대부분이 이제는 추상적인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는 백두산의 그 천지. 지저분한 타일이 붙여진 거대한 욕조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 안에 있는 것이 천지라면, 그건 그냥 종북 빨갱이로 이름붙여진 그 어떤 개념. 종북몰이가 결국 저런 형태일 테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차이 구어치앙의 '화이트 톤'. 마치 알타미라 벽화 같은 느낌의 거대한 프레스코 화. 다른 작가의 전시에서도 원시로 회귀 같은 느낌을 좀 받았는데, 결국 미술은 원시로 '나아가려' 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가 이 작품과 함께 있었다면 좀 더 진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레이몽 드파르동의 '프랑스'. 프랑스를 다니며 찍은 사진이라고. 그냥 사진전 파트라고 생각하고 보면 예쁘다.

 

모리야마 다이도의 '폴라로이드 폴라로이드'는 타일 같은 형태로 사진을 배치해서 뭔가 예술스럽게 보이려고 했는데, 사진이 어떻게 현대미술로 들어갈 수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근데 다이도의 작품은 자세히 보면 좀 음울하지만, 대략 보고 넘어가면 바르셀로나의 타일이 떠오르기도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어차피, 우주는 계속해서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이성의 끈을 놓고 그냥 구경하기로 하자.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장 미셀 오토니엘의 유니콘. 그 뒤는 사랑의 풍경. '사랑의 풍경'은 찬찬히 보면 제목과 어울리는 느낌이 있다. 사랑할 때 드리워지는 커튼 같은 느낌이랄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느낌 때문에 미술을 보는 것이니, 한 번 직접 작품 앞에 서보기 바란다. 근데 한 순간 딴 생각을 하면 드림캐쳐 같은 느낌이 나서,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그것도 묘미.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론 뮤익의 침대에서. 다른 사람들 나오는 사진이 아니라서 크기 가늠이 안 되겠지만, 이 작품은 거대한 인간 모형이다. 저 불룩한 부분이 거의 성인 키 높이 정도 된다. 현장에서 직접 보면 저 시선에서 아주 기괴한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의 한 컷도 어떤 장소에 갖다놓느냐, 혹은 확대나 축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뫼비우스의 '다시 지구'라는 에니메이션. 일단 에니메이션이라 그런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상영실이었다. 사람이 많은 바람에 나는 중간에 더워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웹툰 작가 선우훈의 '가장 평면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제목의 작품. 웹툰으로 작품 하나를 만들었는데, 최근에 있었던 여러가지 사건들이 세로 스크롤 형 그림 안에 여기저기 들어가 있다.

 

미술관에서 큰 화면이나 작은 태블릿으로도 넘기면서 볼 수 있지만,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하이라이트 전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하이라이트전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조금 내려가면 '가장 평면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작품 소개에 아이폰에 웹툰이 나오는 그림이 있다. 그걸 클릭하면 작품을 볼 수 있다. 링크는 이 글 맨 아래에 걸어놓겠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요코오 타다노리의 '113 초상 연작'. 전시관 사이 복도 한쪽 공간에 걸려 있다. 공간이 조금 의외였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데이비드 린치의 무제. 기괴하고 음울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검은 벽면을 따라 쭉 전시되어 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면 좀 무서울 것 같은 느낌이다. 하나하나 찬찬히 보다가 오늘밤 꿈에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때 퍼뜩 자리를 떠나도록 하자.

 

참고로 이 사람은 유명한 영화감독 그 사람이 맞다. 트윈픽스, 블루밸벳, 이레이저 헤드 같은 작품들 만든 사람. 그런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를 이 작품들을 통해 짐작해볼 수도 있겠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수학, 아름다운 그 곳'이라는 작품은 동영상이다. 영사실 안에서 상영되는 영상인데, 계속해서 칠판에 무슨 수학식을 쓰는 장면만 나온다. 한 수학자가 일생일대의 대단한 뭔가를 하는 장면을 찍었다고 하는데...

 

물론 수학이 아름다울 수 있다. 수학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학이 아름답다고 하는 걸 많이 보고 듣기도 했다. 한두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다면 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겠지.

 

하지만 난 빼줘. 으악! 수학이다! 하고 도망갈 인간일 뿐이니까. 어쨌든 그런 입장이긴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영감을 줄 수도 있는 작품일 수 있다. 수학자나 과학자, 혹은 프로그래머도 자신의 작업으로 현대미술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영상을 지긋이 지켜보는 사람들도 세 명이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도 심심하면 아트나 한 번 해보자.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기타노 타케시의 '동물과 꽃병들'. 동물 몸통을 꽃병으로 만들어서, 대가리 있을 부분에 꽃이 나와있다. 동물의 귀여움과 꽃의 아름다움이 만나서 기괴한 무언가가 돼버렸다. 꽃꽂이라는 행위 자체가 그런 것 아닌가라는 질문일 수도 있겠다.

 

이름에서 친숙함을 느낄텐데, 영화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그 기타노 다케시 맞다.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앞쪽은 후안나 마르타 로다스의 '도자 조각들', 뒷쪽은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얼굴 모양의 병'.

 

도자 조각들은 파라과이 전통 도자기를 만들다가 점차 실용성에서 멀어지면서 예술품이 되었다 한다. 그 뒤의 얼굴 모양의 병도 실용성은 찾을 수 없는 도자기인데, 석기시대의 종교적인 도구 같아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석기시대 토기들도 어떤 엉뚱한 사람이 아무 의미 없이 실용성 없는 뭔가를 만들었는데, 어 이거 종교적인 용도로 쓰이던 거다 우왕 하고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마크 쿠튀리에, 셋째 날의 드로잉들. '물질적인 것에서 비물질적인 것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유명한 사람이다. 물질과 비물질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벽에 낙서를 하면 연필이 닳아서 물질적이 것이 비물질적인 것이 되고, 벽이라는 물질이 그림이라는 비물질이 되고 등등 할 수 있다. 그만 알아보자. 할 말은 많지만 아끼겠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보통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는 SeMA 홈페이지의 간략한 소개가 거의 온라인 활동의 전부다. 하지만 이번 하이라이트 전은 이 전시를 위한 홈페이지가 따로 만들어져 있고, '구글 아트 & 컬쳐' 사이트에서도 작품 모습과 설명을 볼 수 있다.

 

물론 현장에서 보는 것보다는 못 하지만, 전시를 미리 한 번 둘러보거나, 나와 맞을지 가늠해 보는 용도 등으로 활용하기 좋다. 이런 디지털 아카이브도 계속해서 쭉 쌓아가면 좋을 텐데, 아마도 구글 쪽은 이 전시 말고 다른 전시들도 보여주고 있으므로 계속 쌓이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관람 가기 전에 한 번 둘러보도록 하자 (둘 다 한글로 나온다).

 

>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홈페이지

 

> 하이라이트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 - 구글 아트 & 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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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서소문동 37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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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