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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갤러리, 두산아트랩 - 실험적인 옴니버스전시 공연 2017. 7. 26. 15:48
두산갤러리 서울에서는 8월 19일까지 '두산아트랩 2017' 전시가 열린다.
'두산아트랩'은 두산아트센터에서 만 40세 이하의 젊은 예술가들의 새로운 시도를 다양한 형태로 실험해 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행사로, 잠재력 있는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한 전시다. 이번 전시에는 노혜리, 손현선, 우정수, 임영주, 조혜진이 참여하여 회화,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선보인다.
갤러리 입구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노혜리 작가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이다. 오프닝때 했던 퍼포먼스를 기록해서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아빠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했다"는 식의 내용을 끊임없이 읊조리며 물체들을 배치하여 작품 하나를 완성해나가는 퍼포먼스다. 마치 시골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끊임없이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마늘이나 도라지를 까는 모습과 흡사하다.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나 해석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으니 차치하더라도, 디스플레이의 배치는 좀 문제가 있다. 퍼포먼스의 기록 영상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가 작품의 일부로, 일종의 데코레이션으로 사용될 의도였다면 이걸 작품 옆이나 뒤에 배치하는 게 좋았을 테다.
하지만 영상물을 갤러리 입구에 잘 보이는 곳에 갖다 놨다는 것은, 퍼포먼스를 기록물로라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은데, 관객들이 보기엔 너무나 불편한 형태다. 일단 갤러리 입구 사람들 지나다니는 통로에 배치돼 있는데다가, 바닥에 아주 낮게 디스플레이가 설치돼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의자 같은 것도 하나 없다. 이쯤되면 9분이나 10분 정도 되는 영상을 계속 지켜보고 서 있을 관객은 거의 없을 거라고 봐야 한다.
퍼포먼스를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퍼포먼스를 구경한 관객들도 비슷한 형태로 바닥에 앉아서 봤기 때문에 그런 현장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바닥에 낮게 장치를 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건 현장과 녹화물의 차이를 무시한 것이다.
락페스티벌 같은 음악 공연을 생각해보자. 현장에서는 뮤지션들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지만, 고출력 스피커와 무대 조명, 그리고 열광하는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합쳐져서 하나의 공연을 이룬다. 이걸 기록한 영상물은 뮤지션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기도 하고, 관객들의 열광적인 모습을 쭉 훑어 보여주기도 하며, 상공에서 내려다본 공연장 모습 등을 다이나믹하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현장의 그 열기를 느끼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그게 바로 현장과 녹화물의 차이다.
녹화 영상은 일단 한마디로 식어버린 찐빵이라 할 수 있다. 그걸 어떻게든 맛있게 보여주려면 일단 관객들이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최대한 관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도 볼까말까이고, 일단 보게 만들어야 작품을 감상하고 평가를 하든 어쩌든 할 거니까.
그러니까 이 디스플에이는, 영상물을 조용히 관람하기 좋을만 한 어느 구석에, 의자가 될만한 것을 놓고, 눈높이를 맞춰서 배치해 놓는 게 좋을 듯 하다. 이대로라면 잠시 서서 몇 초 슬쩍 보고 지나치는 사람만 있을 테다.
한 권의 책마다 어떤 사연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유령이 살고 있는 듯 한 느낌, 혹은 독자를 잡아 이끌어 홀리는 로렐라이 같은 존재가 있는듯 한 느낌을 표현한 작품 '책의 유령'. 그리고 또 하나의 책을 소재로 한 드로잉 작품은, 책을 통해서 느낄만 한 어떤 느낌이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런 두어 점의 단편적인 작품으로는 어떤 느낌이나 메시지를 던져주기엔 좀 부족한 면이 있다. 드로잉 뿐만 아니라 책을 소재로 한 설치미술 형태의 소품을 함께 활용해서 조금 더 큰 규모의 전시를 열면 꽤 재미있는 전시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일상 속 사물에서 관찰한 미적 조형성을 발견한다는 조형물은 일단 눈길을 끄는데는 성공했다. 조명을 설치해서 좀 더 예쁘게 연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은 들었지만, 실험적인 전시라서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보자. 이런 조형물들이 좀 더 예쁜 조명을 받으며 꽉꽉 들어차 있으면 아름아운 전시가 될 듯 하다. 물론 '일상'이 작가의 일상이 아닌 관객의 일상에 좀 더 접근하면 공감도 이끌어낼 수 있을 테고.
여기서도 멀티미디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영상, 음향 복합물이 등장했다. 특히 젊은 작가들이 이런걸 많이 하는데, 아무래도 이런 영상물에 익숙해서 이런 전달물질을 선택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문제는 관객들도 이제 이런 것에 익숙하다는 거다. 그게 왜 문제냐면, 너무나 익숙해서 관객들이 웬만한 영상물로는 발길을 멈춰 서지도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회화에 비해 영상물은 그냥 카메라만 갖다 대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쉽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찾아가는 과정이나 소재를 발굴하는 과정이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든 여정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회화와는 다르게 영상물에서는 그런 노력들이 보이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아무 생각없이 저지르는 실수가 여기서도 보였다. 멀티미디어 작품을 관람하는데 쓰는 헤드폰. 불특정 다수가 들어오고 나가는 곳인데다가, 지금은 여름이다. 나 역시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이 갤러리에 들어갔다. 아마도 얼굴에 땀이 말라붙었을 거다. 그 상태로 헤드폰을 낀다, 땀이 묻는 건 물론이고 화장품이 옮겨 붙을 수도 있다. 그걸 다시 내 피부에 갖다 댄다니. 딱히 결벽증이 있거나 엄청난 깔끔쟁이가 아니더라도 많이 꺼림칙하다. 결국 영상만 슬쩍 보고 지나간다.
작품의 내용이 누군가에게 가 닿기도 전에, 그 전달 매체의 접근성 문제나 거부감 등으로 관객에게 가 닿는게 차단돼버린다면 좀 안타까운 일이다.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라면,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가 닿을 수 있는 전달물질까지도 꼼꼼하게 많이 고민해봤으면 싶다.
비교적 작은 크기의 갤러리에 다섯 작가의 작품을, 그것도 실험적인 작품들을 전시해놓으니, 다양하게 여러가지 볼 수 있긴 했지만 의미를 파악하면서 오래 발길을 머물기는 좀 어려운 전시였다.
두산아트랩 자체가 실험적인 작품들을 쇼케이스 형태로 보여주는 전시라고 하니까 그러려니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의도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작품 옆에 A4지에라도 간략한 설명을 써 붙여놓으면 좋지 않을까. 아무리 실험이라도 의미는 좀 알 수 있어야 하니까. 아무쪼록 작가들이 좀 더 발전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행사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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