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는 기획전시 전체를 상대적으로 평가해볼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작품들이 몇 개 있다.

 

 

'전시가 이어집니다'는 (거의) 상설전시를 하고 있는, 마치 작품이 아닌 것 처럼 전시되어 있어서 흔히 사람들이 무시하고 지나치는 작품 중 하나다. 심지어 마음대로 만질 수도 있어서, 감각적 체험으로 관객과의 소통과 교감을 이루는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라 할 수 있다.

 

전시가 '이어진다'라는 것은 이전에 전시가 있었고, 이후에도 전시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것은 전시가 아닌가. 전시와 전시를 전시로 잇는 역할을 하는 것 또한 전시일 수 있다. 당연하다. 그렇다면 미술관 전체가 전시인가. 그건 또 아닐 테다.

 

따라서 '전시가 이어진다'는 것은, 앞서 경험한 전시와 전시 아닌 것들과 후에 있을 전시와 전시 아닌 것들 사이에서, 이후에는 전시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질 수 있다. 과연 이 사인은 사실일까. 전시가 이어진다고 했지만 전시가 나오지 않으면 거짓일 테다. 물론 전시가 나오면 사실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지금은, 알 수 없다. 착란적 즉시성이다.

 

하지만 대개의 관람자들은 이것을 사실로 믿을 테다. 작품(이 아닌 것 처럼 가장한 작품)이 거짓을 알릴 거라고 의심할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테다. 이것은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즉, 전시가 이어진다는 말을 사실로 믿고 진행하면, 이후에는 전시가 아닌 것도 전시라고 믿게 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미술관 내부의 전시라는 이데아를 현재라는 시공간에서 표현하고 가리키며 움직임과 행동을 유발하게까지 만드는 시뮬라르크다.

 

 

 

바닥에 마치 아무렇게나 그려놓은듯 한 방향표시 작품도 거의 비슷한데 약간 다르다. 여기서는 '전시실'이라고 알려주어, 사람들이 전시가 있을 것이라 믿게끔 만들어주지만, 사실 전시가 있다고는 말 하고 있지 않다. 그저 전시실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기만적 시뮬라르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표식 자체는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다. 문제는 표식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표식이 대자적 존재이고 관찰자는 즉자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단순히 그것을 깨닫게 해주기만 한다면 큰 의미 없는 작품이겠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이 관찰자의 발 아래 위치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발로 밟을 수도 있게 해놨다. 내 발 아래 있는 존재가 내가 지향해야 할 존재일 수 있다는 존재론적 역설이다.  

 

앞서 소개한 작품과 함께 이 '방향표' 작품 또한, 미술관 전시실이 키치가 될 때 캠프의 역할을 하는 유동적 존재성을 가지는 작품으로, 이로써 미술관 전체를 대변하는 메타포인 동시에 위대한 예술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이 척도들이 어떻게 작용하냐면, 예를 들어, "안타깝게도 이번 기획 전시는 척도 작품보다 나은 것이 없었다"라는 표현으로 사용할 수 있다.

 

무심한 듯 놓여 있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이 작품들도 한 번 깊게 감상해보자. 이 작품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언제 가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돌아올 수 있다.

 

 

p.s.

이 글 또한 시뮬라시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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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소격동 165-10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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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