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동남아 삽질 여행 51

쑤코타이에서 롭부리 가기


쑤코타이 역사공원에서의 하이킹은, 여행 막바지에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을 맛 볼 수 있었던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 낮의 뜨거운 태양도 자전거를 달리면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상관없었던 곳. 노을마저 아름답던 그 폐허의 푸른 초원. 마음같아서는 쑤코타이 올드시티에 며칠 머물면서 역사공원을 들락날락 하고 싶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니 이제 떠나야 할 때.

쑤코타이 시내에서 버스터미널까지 툭툭 요금은 20밧 (비수기라 장사가 안 되는지 흥정하기 쉬웠다). 다음 목적지는 롭부리(Lopburi).

쑤코타이에서 롭부리로 가려면 아유타야에서 버스를 타는 편이 낫다는 숙소 주인 말에 아유타야 행 버스를 타러 갔다. 하지만 쑤코타이에서 아유타야 가는 버스편은 잘 없어서, 버스터미널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만 했다. 방콕 가는 버스는 수시로 많이 있었는데, 내 생각엔 방콕 가는 길에 아유타야에 내려주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아닌가보다. 어차피 아유타야 가는 버스도 최종 목적지는 방콕이던데.

어쨌든 차표 끊고 남는 시간에 저녁 먹고 빈둥거리다가 저녁 7시 반에 아유타야 가는 버스를 탔다. 쑤코타이에서 아유타야까지 버스 요금은 234 밧.

지나고 나서 생각 해 보니 쑤코타이에서 롭부리나 아유타야를 갈 생각이라면, 차라리 핏싸눌록(Phitsanulok)으로 가서 기차를 타는 게 낫지 않나 싶다. 특히 롭부리는 바로 가는 버스가 없으니까 열차편이 더 유용할 듯 싶다. 물론 쑤코타이에서 롭부리로 갈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쑤코타이의 TR 게스트하우스 앞에 있는, 낡았지만 왠지 모를 멋이 풍겼던 다세대 주택. TR 게스트하우스는 짧은 시간이나마 인터넷도 공짜로 사용할 수 있고, 가격에 비해 방도 좋은 편이어서 만족스러웠다.


쑤코타이 버스터미널을 떠나려고 대기중인 버스 안. 이 때는 또다른 삽질이 기다리고 있을 줄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아유타야. ㅡㅅㅡ;

아유타야(Ayuthaya)는 옛날에 태국 역사상 가장 번창했던 아유타야 왕조의 수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허물어진 사원들과 몇몇 탑들이 현지 가옥들과 조화를 이루며 조용히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곳인데, 쑤코타이 역사공원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다.

하지만 아유타야 유적지는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 밀집 지역과 가까운 곳에 위치 해 있고, 현지인들의 주택지역과도 가까이 있기 때문에 쑤코타이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매력이 있는 곳이다. 사실 나보고 쑤코타이와 아유타야 둘 중 한 군데만 간다면 어느 곳을 택할 거냐고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아유타야라고 답 할 테다.

어쨌든 그렇게 좋아하는 아유타야지만, 이 날은 완전 엉망이었다.


방콕에서 아유타야 가는 버스를 타면, 유적지 근처에서 버스가 선다. 그래서 조금만 걸으면 숙소도 쉽게 잡을 수 있고, 숙소에 짐 풀고 바로 뛰쳐나가서 유적지를 구경할 수도 있다.

그런데 쑤코타이에서 아유타야 가는 버스는, 아유타야 유적지에서 6~7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고속도로 한 가운데에 떡하니 세워서는 내리라고 했다. 내리는 지점에 툭툭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어쩌다 한 번 그러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게다가 정해진 곳에서 주정차 하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장거리 버스가 그런 곳에서 세웠으니까, 아마도 북쪽에서 아유타야 쪽으로 내려오는 버스들은 다들 그런 허허벌판에 손님을 내려놓고 바로 방콕으로 휑하니 가버리나보다.

새벽 1시 반에 그런 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내린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상황. 대체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툭툭 기사들은 졸린 눈 비벼가며 타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간에 툭툭을 탄다 해도 딱히 갈 곳도 없는 상황. 그래서 시간도 보낼 겸 그냥 걸었다.


세 시간 가까이 걸어서 겨우 아유타야 시내 즘 진입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아유타야 역에 닿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시 외곽에서 시내에 가까워질 수록 걸어가기가 힘들었다. 바로 개 때문에. 밤이 되면 아주 사나워지는 태국의 개들. 개들을 피해서 왕복 8차선 도로 중앙선을 따라 걷기도 했지만, 어디선가 뛰쳐나와 물려고 달려드는 개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태국도 치안이 좋은 편이지만, 개 치안은 엉망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불러 탔다. 아유타야에서는 영업용 오토바이가 길에 많이 다니는데, 영업용임을 알리는 조끼를 입고 다니니까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택시 타듯이 지나가는 영업용 오토바이를 불러서 흥정하고 타고 가면 된다. 물론, 태국의 다른 지역에도 영업용 오토바이들이 다니긴 하는데, 아유타야가 유난히 많은 편이다.



사실 난 영업용 오토바이는 웬만해선 안 탄다. 여태까지 영업용 오토바이를 타서 제대로 목적지까지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이 영어를 전혀 못 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대체로 이 사람들의 사고구조는 그냥 대충 비슷한 곳에 아무데나 데려다 놓고 돈만 받으면 된다라는 생각들로만 가득한 것 같다.

아니나다를까, 이번에도 엉뚱한 곳으로 가고 말았다. 아유타야 역에서 아침 첫 차를 타고 롭부리로 가려고 했는데, 이 오토바이 기사가 어떤 길 가의 세븐일레븐 앞에 나를 내려주는 것. 그러면서 "여기서 새벽 5시에 롭부리 가는 첫 차가 오니까 그거 타면 된다"란다. 내가 분명히 기차역으로 가자고 강조하고 강조해서 말 했는데도!

그래서 아침부터 화가 났고, 다시 처음 그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오토바이 기사는 당연히 안 된다며 버텼고, 그럼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버텼고. 결국 돈 안 준 놈이 이긴다. 오토바이 기사는 한참을 나하고 대치하다가 그냥 휑하니 가버렸다. 일도 제대로 안 하고 돈만 챙기려 들다니! (참고로, 아유타야 외곽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역까지 (약 4킬로미터) 오토바이로 태워주는 데 요금은 30 밧 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곳이 롭부리 가는 버스가 오기는 온다는 것. 나중에 보니 그 곳은, 역에서 약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아유타야 강 안쪽 어느 귀퉁이의 세븐일레븐 앞이었다. 특별히 정류소 표지판 같은 것은 없었지만, 아유타야와 가까운 다른 지역으로 가는 시외버스들이 출발하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세븐일레븐의 버거를 사 먹으면서 꾸벅꾸벅 졸다가, 새벽 6시 첫 차를 타고 롭부리로 갔다. 아유타야는 이미 몇 번 가 본 곳이니까 롭부리로 바로 떠났는데, 그러면서도 내심 망설이기도 했다. 그냥 아유타야에 머물면서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까라는 마음 한 구석의 외침. 하지만 롭부리의 해바라기 꽃밭을 보고싶다는 이유 하나로 마음을 다잡고 바로 떠났다.


새벽 6시에 아유타야에서 출발한 작고 낡고 허름한 미니버스(승합차가 아닌, 말 그대로 크기가 작은 버스)는, 시골길 여기저기를 달리며 서고 하다가 아침 8시가 되어서야 겨우 롭부리에 도착했다.

사실 처음 몇 십분 말고는 기억이 없다. 완전히 골아떨어져서 잠에 푹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문득 부시시 눈을 떠 보니 롭부리 역이 보였고, 그걸 보자마자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일어났던 것. 그 때 즘엔 그 작은 버스가 사람으로 꽉꽉 들어 차 있어서 내리는 데도 꽤 힘이 들었다.

생전 처음 와 보는 롭부리(Lopburi). 유적같은 것도 별로 없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 지방 소도시. 11월에서 1월 사이에 열리는 해바라기 축제 때는 그나마 여행자들이 좀 찾아간다고 한다.


롭부리 시내는 딱히 지도가 필요 없을 정도로 조그만 곳이다. 그래도 방콕이나 아유타야 등과 가까워서 그런지, 치앙라이보다 규모도 작은 도시지만 그 곳 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KFC 같은 것. ㅡㅅㅡ;


동네 구석에 다 허물어진 유적들이 몇몇 있다.


유적들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유적을 챙겨 보러 갈 곳은 아니다.


그래도 나름 유적들과 현지인들의 삶이 어우러진, 여유로운 지방 소도시의 분위기를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곳. 불편하지 않는 도시생활을 누리면서도 태국의 지방 소도시의 한가함을 즐기고 싶다면 롭부리도 괜찮은 곳이다.


롭부리의 한 학교. 저 출입구 안쪽엔 초중고교가 모두 모여 있었다. 근데 얘네들은 대체 학교수업 체계가 어떻게 되는 건지, 오전에도 길거리 나와서 돌아다니는 애들이 정말 많다. 전부 다 날라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였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듯.


프라 나라이 랏차니웻(Phra Narai Ratchaniwet) 들어가는 입구. 17세기 나라이 왕이 건설한 궁전인데, 지금은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학생들이 단체로 관람하러 들어가기도 하고, 단체 관광객들이 관광버스 타고 와서는 우르르 줄 지어 들어가기도 하는, 롭부리에서는 꽤 유명한 곳인 듯 했다. 하지만 나는 피곤하므로 그냥 패스. ㅡㅅㅡ;


걸스카웃 옷 입은 애들 셋이 나오더니, 오토바이 하나에 셋이 타고는 쌩하고 외곽 쪽으로 빠져나갔다. 근데 얘네들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왜 날라리 여학생들은 다들 앞머리를 눈 밑까지 내리는 걸까? ㅡ.ㅡ;


터덜터덜 목적 없이 동네 둘러 보는 중.


'왓 프라 씨 라따나 마하 탓'이라는 유적 근처에 태국관광청(TAT)이 있었다. 관광청에 가서 해바라기 들판을 보고싶다고 하니까, 거기까지 가는 버스편과, 버스 타는 곳 등을 자세하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별로 필요 없는 롭부리 안내 팜플렛도 한 묶음 안겨줬고. 근데 반은 영어, 반은 일본어.


무슨 유적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담 넘에서 본 곳. 롭부리는 아주 작은 마을에 시장, 주거공간, 여행자 숙소, 상가, 유적 등이 오밀조밀 다 모여 있어서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




뭔가 유적이었을 듯 한 폐허. 여기는 명찰도 없고, 가이드북에도 나오지도 않는다. 뭐, 어쩌면 유적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곳이 주택가에 있으면서 별다른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고 잘 어울린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사실은 막 장사 시작하려고 노점 펴는 아저씨를 찍으려 한 것이지만... ㅡㅅㅡ;;;  길 가는 저 처자의 복장은 태국 여대생 교복 (흰 블라우스에 검은색 치마). 방콕에 가면 저런 복장을 하고 길거리 나다니는 여자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꼭 여대생만 입으라는 법은 없다.


집 앞에 마당이 없어서 화초를 가꿀 수 없다구요? 화분 놓을 자리가 없어서 많은 화분을 둘 수 없다구요? 화분을 매달아 보아요~


TAT = Tourism Authority of Thailand. 태국관광청. 태국관광청은 잘 보이지 않고, 찾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지만, 일단 찾아 들어가면 친절한 직원들이 반기면서 아주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삼십 분 동안 주저앉아 있었던 길바닥.


슬슬 움직여보자. 저어기 어느 에어컨 나오는 가게에서 닭빵과 콜라를 먹었더니 그나마 기운이 솟았다.


저기 보이는 저 사원은 프라 쁘랑 쌈욧(Phra Prang Sam Yot). 이 주변은 롭부리만의 독특한 볼거리가 있다. 그건 다음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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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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