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한가운데 위치한 활화산 도카치다케. 멀리서 보는 분화구는 사실 연기 좀 나는 것 말고는 딱히 이렇다 할 것이 없었지만, 그것과 함께 숲과 연봉 등이 어우러진 모습이 묘한 끌림이 있어 내려가는 길에도 자꾸 뒤돌아보게 됐다. 자전거 끌고 힘들게 몇 시간 기어 올라간 보람이 있었다. 물론 그런 보람은 평생 한 번이면 족하다.

 

 

손각대를 잘 사용해서 호흡을 가다듬고 최대한 줌을 당겨 찍어봤다. 여기까지가 한계다. 아, 저길 한 번 올라가봐야 하는 건데.

 

 

 

이제 그만 분화구를 뒤로하고 슬슬 산을 내려간다. 산꼭대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 있는 야영장 근처는 평탄한 길이 한동안 이어졌고, 그 다음엔 천천히 구불구불 아래로 내려가게 돼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나마 올라올 때 이 길을 택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다. 이쪽 길은 너무 길게 이어져서 힘도 더 많이 들고, 시간도 더 많이 걸렸을 듯 하다. 어차피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하는 길이라면 경사가 좀 가파르더라도 좀 더 짧은 거리를 올라가는 게 나으니까.

 

 

 

올라올 때는 딱히 이렇다 할 특이한 것도 없었고 힘도 들고 해서 별다른 사진을 찍지 못했고, 내려갈 때는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에 자전거를 멈추기 싫어서 사진을 못 찍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내리막의 서늘한 바람이 기억날 정도로 즐거운 라이딩이었다.

 

 

 

갓길은 자잘한 돌과 이런저런 파편들이 많아서 신경쓰였다. 어차피 차도 거의 없으니까 그냥 차도로 편하게 달렸다. 도로 위에는 화살표로 표시를 해놨는데, 눈이 쌓이면 여기가 길이라고 알려주기 위한 표시라 한다. 토카치다케는 눈이 쌓였을 때 더욱 멋진 모습이던데, 겨울엔 숙소 잡고 차편 선택하고 기타등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저 산을 구경해볼 수 있겠지. 겨울 모습도 한 번 보고싶긴 한데, 이제 교통편 알아보고 어쩌고 하며 여행 다니는 게 귀찮아서 실현 가능성이 높진 않겠다.

 

 

이렇게 뱅글뱅글 돌아서 내려가게 돼 있다.

 

 

내려가다보니 작은 마을 하나가 나왔다. 도카치다케 관광을 위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듯 했다. 건물이 그리 많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 가게도 있고, 버스 정류장도 있고, 큰 숙박업소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비싸겠지. 난 못 묵을거야 아마.

 

 

 

 

 

 

아무래도 산 중턱 쯤이라 매점이 저 아래 번화가보다는 좀 비싼 편이었다. 이 마을부터 정말 신나는 내리막길이 거의 일직선으로 쫙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딱히 여기선 아무것도 사먹지 않고 조금 더 참았다.

 

이 동네엔 큰 규모의 숙소도 몇 개 있고, 산책로도 있고 해서 관광객들이 많았다. 숙박업소에 묵는 사람들도 있었고, 관광버스 타고 산책로를 둘러보고 다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근데 아무래도 여기 있는 숙소들은 가격이 비싼 건지, 게스트하우스를 찾으며 두리번거리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자전거 타고 내려오다가 게스트하우스 본 거 있냐고 나에게 묻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근처에 좀 허름해보이는 숙박업소들이 있어서 대충 말은 해줬는데, 거기라고 값이 쌀지는 잘 모르겠다.

 

내려가다보니 차도 위로 여우 한 마리가 총총 걸어나왔는데, 앞에 가던 차가 그걸 보고 잠시 차를 세우더니 여우에게 뭔가 먹을 거리를 주더라. 던져주는 것도 아니고 손으로 주니 받아먹는다. 아니 저렇게 인간에 대한 경계가 없으면 이 근처 집 신발도 여럿 물어갔겠네 싶기도 하고.

 

어쨌든 신나는 내리막길이었다. 거의 일직선이라 시야도 탁 트여있어서 마음껏 속력을 내서 달릴 수 있었다. 앞서 가던 자동차와 거리가 크게 벌어지지 않을 만큼 속력을 내고 달렸을 정도다. 그래서 당연히 사진은 없다.

 

 

날아갈 듯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온 내리막길이 끝나고 다시 평지가 시작됐다. 다시 고행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잠시 멈춰서서 앞서가던 차를 멀리 보냈다.  

 

 

 

 

또 작은 마을이 나왔는데 여기는 큰 호수가 있었다. 상류 쪽은 물색이 정말 쪽빛이었다. 마치 맑은 바다에 온 듯한 색깔. 사진으로 찍으니 그 색깔 다 사라졌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이 근처에 푸른연못(blue pond)이 있다 한다. 아마 쪽빛 색깔을 하고 있는 작은 연못이지 싶다. 거기도 관광지라 한다.

 

 

하류 쪽은 그냥 평범한 호수였다. 해 지기 직전 쯤 되는 시간이라 호수 주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니 추울 정도였다. 매번 이 시간 이후부터는 바람에 온기가 사라졌다. 호수 오기 전에도 소나기를 몇 번 맞았는데, 그것 때문에 더욱 추웠다. 그래도 산 아래 큰 마을에서는 해가 져도 이 정도로 춥진 않았는데. 

 

 

호수 근처에서 잠깐의 오르막이 있었다. 거의 다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오르막이 떡하니 나타났을 땐 큰일났다 싶었다. 이러다가 해 지기 전에 마을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 싶어서. 야광 표지판과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자전거로 야간 주행은 위험하다. 야간에 내리막길 가는 것보단 차라리 대낮에 오르막길 오르는 게 낫다. 최소한 사고는 안 나니까.

 

다행히 오르막은 그리 길지 않았고, 잠시 쉴 틈도 없이 다시 앞에 펼쳐진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갔다. 약간 속력을 내며 쉬지 않고 달렸더니 마침내 완전히 산에서 벗어나서 비에이 쪽의 어느 마을로 접어들 수 있었다. 처음엔 여기도 산 속 마을인가 싶었지만, 이내 익숙한 국도가 나와서 안심할 수 있었다.

 

 

정확히 어디쯤인지 잘 모르겠지만, 비에이 쪽 어디쯤이었다. 앞쪽으로 신나는 직선도로가 정말 일직선으로 쫙 뻗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가미후라노로 가기 위해 길을 꺾어야만 했다. 정말 안타깝다. 자전거를 차에 실어 올라갈 수만 있다면 이 내리막길은 다음번엔 낮에 다시 정말 제대로 한 번 타보고 싶다.

 

비에이와 후라노 중간 어디쯤에서 해가 졌다. 이쪽 동네들이 관광지인 이유가 있다. 정말 들판만 바라보고 있어도 어찌되든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평안해진다. 특히 비에이 쪽은 딱히 이것저것 찾아다닐 필요 없이, 그냥 드라이브만 해도 기분이 상쾌해질 곳이다.

 

 

가다보니 정말 마음에 드는 풍경이 나왔다. 언젠가는 이런 곳에서 저런 집 짓고 살고 싶다. 아침엔 새소리에 잠을 깨서 상쾌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낮에 내리는 비를 보며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저녁엔 석양을 보며 하루를 마감하고, 밤에는 캄캄한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잠자리에 드는 그런 삶. 꽝, 다음 인생에.

 

 

 

베이스 캠프로 삼고 있던 가미후라노에 도착하니 이미 캄캄한 밤이 됐다. 그래도 익숙한 동네에 접어들면서 밤이 된 덕택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라이딩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팜플렛엔 여덟시간인가 열시간인가 걸리는 코스라고 나와있었지만, 난 거의 12시간 걸렸다. 물론 중간에 퍼질러 앉아서 노닥거리기도 했고, 나무그늘 아래서 좀 드러누워 있기도 했지만.

 

이날은 오르막 길에서도 힘이 들었지만, 마지막 무렵 평지에서도 해 지기 전에 빨리 가자고 무리를 좀 해서 여러모로 몸에 무리가 갔다. 그래서 다음날은 거의 움직이지도 못 하고 동네 마실이나 좀 다니면서 노닥거려야 했다. 이 산만 안 탔으면 거의 이삼 일 정도 더 일찍 여기를 떠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더 늘어나버렸다. 그것도 다 운명이겠거니. 그렇게 오래 머문 덕분에 난 이제 홋카이도 하면 가미후라노가 먼저 떠오른다.

 

캠프장 들어가기 전에 밀렸던 식사를 하기 위해 또 세이코 마트 편의점을 찾아갔다. 시간도 적당하게 도시락을 약간 세일하면서도 아직 먹을만 한 게 남았을 시점. 저 마트 이름을 처음 봤을 땐 사이언스 마트인 줄 알고는 무슨 과학도구 판매하나 생각하기도 했는데, 홋카이도 여행 중엔 조금 멀리 있어도 일부러 찾아갈 정도로 애용했다. 이런저런 맛집 찾아다니며 혹시나 실패하지 않을까 걱정할 거면 차라리 세이코마트 도시락을 먹는 게 낫다.

 

어쨌든 이렇게해서 쓸 데 없이 팜플렛에 낚여서 도카치다케 사이클링 한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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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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