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페 게이트는 태국 치앙마이 여행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유명한 곳이다. 사각형의 해자로 둘러싸인 올드 타운을 동쪽에 위치한 문으로, 문 자체보다는 이 주변 일대가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기 때문에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 쯤 들를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치앙마이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선데이 마켓도 타페 게이트에서부터 올드시티 중심부까지 쭉 이어진다. 이미 수없이 많이 봐 와서 별다른 흥미를 느낄 수 없는 선데이 마켓이지만, 오랜만에 치앙마이를 들르면 또 얼마나 변했을지 요즘 트랜드는 어떤 것인지 겸사겸사 둘러보러 한 번 쯤은 가보게 된다.

 

 

그날도 마침 일요일이고 태국 돈도 다 떨어진 김에 환전 겸 사람 구경하러 몇 킬로미터를 걸어서 타페 게이트까지 갔다. 그런데 평소에 못 보던 한 사람이 있었다. 장기 여행자인 듯 한 행색이었지만 옷은 비교적 깨끗한 젊은 남자였는데, 가방과 잠베, 시계 등을 주위에 늘어놓고 물구나무를 서고 있었다. 시계는 타이머로 설정해놨는데, 16분을 넘어 17분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여태까지 물구나무를 서고 있었던 시간이었나보다.

 

사진은 어느 눈 쌓인 곳에서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는데, 사진 아래 글자는 태국어여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마도 느낌상 히말라야 쪽이 아닌가 싶었다. 가방 쪽엔 골판지에 중국어 간체자로 글을 적어놨는데, '홀로 여행하는 외로운 지구 여행자' 그런 내용이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구걸이었다. 비록 물구나무를 서며 나름 어떤 노동의 행태를 보이며 거저 먹진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긴 하지만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그냥 구걸이라 부를 것이다. 대부분의 구걸에 그렇듯이 사람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이 근처에서 이것저것 한다고 대략 한 오 분 남짓 있었는데, 이 사람에게 돈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앞에 놓인 가방에는 20바트 짜리 지폐가 열 장 정도 꽂혀 있었는데, 아마도 마케팅(?)을 위해 스스로 꽂아놓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돈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를 배경 삼아 셀카를 찍거나, 혹은 신기한 피사체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정말 많았다. 물구나무 서느라 힘이 들었던 탓인지 그의 얼굴은 별달리 변화를 보이지 않았지만, 보는 내가 답답하고 야속한 느낌이었다. 구걸엔 응해주지 않더라도 최소한, 사진 모델로 썼고 그 모델이 돈을 원한다면 모델비로 몇 푼 쥐어주는 게 이치다. 보다 못해 내가 다가가서 사진 몇 장 찍고 이십 바트 짜리 지폐 한 장을 꽂아줬다. 힘들어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캅쿤 갑'하고 쥐어짜듯 인사를 하더라.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 사람들을 의외로 많이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이런 사람'이란 그냥 단순한 거지가 아니라 여행하며 돈을 충당하는 사람들 말이다. 당장 한국에서도 인사동 같은 곳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주로 기타 같은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며 버스킹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그래도 그나마 돈이 좀 모이는 편인 것 같더라. 게다가 그건 구걸이라기보다는 버스킹이라는 다른 용어를 붙여주니 뭔가 그럴듯 해 보이기도 하고.

 

하루는 인사동을 가다가 알록달록한 피스 마크를 큰 종이에 그려 넣고, 지구를 여행하는 평화 여행자라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흑인을 본 적 있다. 노랫말에 평화와 지구가 만나서 인류가 여행을 하네 랄라라 하는 요상한 처음 들어보는 곡이길래, 다 끝나고 나서 물어봤더니 자작곡이라더라. 세계여행을 하다가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 들어왔는데 한국이 이렇게 비싼 곳인지 몰랐다며 최대한 빨리 떠날 예정이라면서도 하하하 웃는 모습이 정말 해맑았다. 그땐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여서 선뜻 밥 사 먹으라며 오천 원을 쥐어줬다.

 

그 때부터 의문이 들더라. 대체 버스킹과 구걸은 뭐가 다른가. 일단 로컬 거지들은 그냥 거지라 치고 논외로 하고, 여행자만 대상으로 해보자. 버스킹은 음악이라는 것으로 기분을 즐겁게 해주므로 구걸과는 다르게 쳐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라면 저렇게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것도 일종의 버스킹에 가깝다. 피사체가 돼 주니까. 음악을 듣고 돈을 주는 것이나, 사진을 찍고 모델료를 주는 것이나 별 다를 게 없다. 확장해가면 사진을 펼쳐놓고 여행 이야기를 해준다거나, 혹은 블로그에 여행 이야기를 적으며 후원을 바라는 것도 별 다를 건 없다. 구걸이라면 구걸이고 버스킹이라면 버스킹이겠지. 요지는 그 모두가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저 버스커가, 물구나무 선 여행자가 여행자가 아닐 수도 있다. 머리 좋은 로컬 거지의 색다른 마케팅 기법일 수도 있을 테다. 그렇다해도 돈을 주는 사람이 잠시나마, 이 돈으로 저 여행자가 여행을 계속하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라며 떠나지 못하는 여행의 꿈을 대신해서 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그건 또 다른 여행을 떠나는 값 싼 방법일지도 모른다.

 

세상엔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 어떤 사람은 세계일주 여행기를 블로그에 꾸준히 올린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들어먹은 사람도 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글을 계속 올리면 사람들에게 좋지 않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말이다. 그리고 이것보다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어떤 여행이나 해외 취재를 위해 모금을 하는 곳에서 비난과 욕설들이다.

 

한국 사람들이 자신이 조금이라도 도덕적, 사회적 혹은 그 어떤 어떤적 우위에 서게 된다면, 상대적으로 하위에 서 있는 사람에게 갑질을 하고 도가 지나칠 정도로 뭐라고 한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건 정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종의 문화고 사회적 체계에 가깝다. 물론 좋은 게 아니다. 그런 기질로 스스로 자신이 뭘 잘못하는 건지도 모른 채 남에게 비난을 해댄다. 그 인간들이 바뀔 기회는 없을 테니까, 아무래도 그 모든 걸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이 사회 구성원들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물론 남들을 들쑤셔서 도움을 달라고 괴롭힌다면 나쁜 일이지만, 그냥 조용히 버스킹을 하거나 구걸을 하거나 하는 것은 별로 문제 될 게 없다. 나는 먹고살기 힘든데 너는 여행을 다니느냐 하는 상대적 박탈감에 비난을 쏟아놓기도 하는데, 사실 잘 따져보면 한국에서 생활하는 거나 가난하게 세상을 여행하는 거나 비용 면에선 큰 차이가 없다. 아니, 오히려 가난한 여행자가 일상 생활자보다 더 적은 돈을 쓰기도 한다. 꼭 이 땅에 붙박혀 비참한 일상을 꾸역꾸역 이어나가야만 도와줄 대상이 된다는 생각이 바로 현 시대 지구인들의 한계다.

 

나도 안다. 여기서 가난하게 일상을 이어가는 것보다 길을 떠돌아다니며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은 곳을 구경하고 다닐 수 있는 방법을. 하지만 이제 그 길을 선뜻 떠나지 못 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렇게 떠나면 다시 돌아올 곳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 또한 구시대적 생각의 틀인지도 모르겠다. 꼭 어딘가 돌아갈 곳이 있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 영원히 떠나보지 않아서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는 결심이 선 순간, 다시 길을 떠날 것이다. 어쩌면 어디선가 홀연히 사라질 것을 예약하고 떠나는 그 날이 곧 찾아올 것 같은데, 아직은 때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 기다림이 영원히 오지 않을 고도가 되지 않길 바랄 뿐. 아니 어쩌면 그렇게 기다림 만으로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쨌든 여행의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굳이 나 자신이 보고 듣고 체험하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를 대신하여 여행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여태까지 쭉 그 예를 들었지만, 남한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신분이 되지 않는 이상 북한을 여행할 수 없다. 이런 경우 어떤 외국인 여행자를 약간 도와주면서 여행 사진을 얻어 본다든가 하는 여행도 있을 수 있다. 아무쪼록 일상에서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발버둥을 쳐보자. 길에서 배운 것을 일상에서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는 무기력한 하루지만 나를 대신할 저 사람을 위해 작은 밥 한 공기 내주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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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